* 지난해 9월 22일 강원 철원군 동송읍 오덕리 들녘에서 농민들이 콤바인 여러 대를 이용해 동시에 벼베기에 나서고 있다. 한승호 기자
쌀값 아직 회복 중인데…약속한 시장격리 미이행
예견됐던 가공수요 증가, ‘이변인 양’ 추가 방출
전농·쌀협회, 규탄 성명 발표…송 장관 해임 요구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2026. 2. 1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 농식품부)의 쌀 수급대책 수정 발표에 농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윤일권, 전농)과 전국쌀생산자협회(회장 김명기, 쌀협회)는 지난달 29일 성명을 내 농식품부의 행보를 “사기극”이라 강하게 비판했다.
정책 수정의 계기는 지난달 22일 발표한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양곡소비량 조사 결과’다. 지난해 수확기부터 이번 발표까지 쌀 생산·소비량 통계가 단계적으로 구체화됨에 따라 농식품부의 2025년산 쌀 과잉량 관측은 당초 16만5000톤에서 13만2000톤으로, 이번에 9만톤으로 최종 조정됐다.
농식품부는 예상 과잉량 감소와 최근 가격 상황을 반영해 당초 세웠던 쌀값지지 대책을 철회했다. △시장격리 10만톤 추진을 전면 보류(사전격리 4만5000톤 추진 보류, 정부양곡 대여곡 5만5000톤 반납시기 내년으로 연장)하고 △정부양곡 가공용 물량을 최대 6만톤 추가 공급(34만→40만톤)하며 △정부 벼 매입자금을 지원받은 산지유통업체의 의무 매입물량을 줄인(지원자금 대비 150→120%) 것이다.
전농과 쌀협회가 반발하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시장격리 10만톤’ 약속 파기에 따른 정책 신뢰도 실추 문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5만5000톤의 정부양곡 ‘대여곡’이다. 양곡 대여는 농식품부가 지난해 처음 고안한 정책으로, 수확기에 앞서 유통업자들에게 양곡을 공급한 뒤 이듬해 3월까지 신곡으로 반납받는 방식이다. ‘수확기 직전 정부양곡 방출’이라는 이례적 상황을 연출하는 대신 신곡 시장격리 효과를 내겠다는 논리로 농민들의 반발을 달래 왔는데, 정작 반납받을 때가 되자 보류를 선언한 것이다.
약속을 뒤집으려면 가격·수급 상황에 누구나 공감할 만큼 심각한 왜곡이 발생해야 하는데, 지금의 쌀값(80kg 산지쌀값 22만9328원)은 평년보단 높지만 농민들이 요구하는 적정 가격(밥 한 공기 300원, 80kg 26만6666원)엔 여전히 크게 미달된다. 농가정서가 정책 수정을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두 단체는 성명에서 “지난해 수확기엔 쌀값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던 정부가 약속을 부정하고 쌀값을 인위적으로 억누르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부를 어느 농민과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두 번째 이유는 가공용 쌀 6만톤 추가 방출의 정당성 문제다. 농식품부가 이 결정을 내린 건 국가데이터처 발표 결과 가공용 쌀 소비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도별 추세를 보면 가공용 쌀 소비량은 이번에 특별히 늘어난 게 아니라 2022년 이후 꾸준히 큰 폭의 증가를 이어 왔다. 이는 쌀협회가 농식품부의 ‘벼 재배면적 감축 정책’을 비판하는 주요 근거였지만, 농식품부는 가공용 쌀 소비 증가 추세보다 밥쌀 소비 감소 추세를 강조하며 비판에 귀를 닫아 왔다.
즉 가공용 쌀 소비 증가는 ‘비상 상황’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음에도 농식품부가 새삼 ‘비상대책’ 형식으로 6만톤 추가 방출을 결정한 것이다. 성명에선 “농식품부가 스스로의 수요 예측 실패와 통계 왜곡을 인정한 꼴이다. 농민의 생존권을 걸고 숫자를 선택적으로 사용한 책임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다”며 지금의 정책 혼란이 농식품부의 자충수임을 지적했다.
전농과 쌀협회는 양곡정책 혼란이 국가 식량주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정부의 ‘땜질 정책’, ‘왜곡 농정’을 규탄했다. 또한 정부를 향해 △약속한 시장격리를 즉시 이행할 것 △정부 대여양곡을 즉각 현물로 회수할 것 △가공용 쌀 수요 증가를 은폐하고 밥쌀용 통계만으로 농민을 기만해 온 양정 정책의 전 과정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으며, “농민을 우롱하고 국가 식량 문제를 도박처럼 다뤘다”며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 해임을 거듭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