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소득 뒤에 감춰진 부채 수탈
채효정 오늘의교육 편집위원장 2026. 2. 8
햇빛이란 말은 따뜻하다. 그런데 이 말이 꺼림칙할 때가 있다. 저소득층 대출을 가리키는 ‘햇살론’이 그랬는데, 지금 농촌에서 회자되는 ‘햇빛연금’, ‘햇빛배당’, ‘햇빛소득’ 같은 말도 그러하다. 지금 농정에서 추진하는 영농형태양광을 비롯한 햇빛소득 정책은 농민에게 돈 안되는 농사 대신 전기 팔아 돈 벌기를 권하는 정책이고, 농민더러 태양광 발전사업자가 되고 금융투자자가 되라는 요구다.
‘햇빛소득마을’ 사업은 그 대표 사례다. 햇빛소득마을은 마을 유휴지, 농지, 저수지 등에 상업용 태양광발전소를 설치·운영해 전력 판매로 수익을 내고 발전 수익을 공유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매년 약 500개소 이상, 2030년까지 2500개소 이상의 햇빛소득마을을 만들고, 45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통해 설비투자 비용의 최대 85%까지 장기저리로 융자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사업은 언론에서 주목받은 몇몇 지역의 ‘성공 사례’를 참조했다. 사업비가 16억7000만원인 여주 구양리 햇빛소득마을의 주민 출자금은 7150만원이고 대부분 자금을 한국에너지공단의 햇빛두레 사업을 통해 조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햇빛두레 사업은 마을(읍·면·행정동) 주민 30인 이상이 자기자본비율 50% 이상을 출자해 법인을 만들고, 마을 내 건물, 주택, 공용부지를 활용해 ‘상업용 태양광’을 설치하고 이익을 공유할 때, 한국에너지공단이 총사업비의 90%까지 최저 1.75% 금리(변동금리)로 융자 지원한다. 융자는 5년 거치 10년 상환인데, 보통 1MW 기준에 18억원 정도 대출을 받는다면, 거치 기간이 끝나는 5년 후에는 원금만 해도 매년 1억8000만원씩 갚아야 한다는 뜻이다.
구양리 사례는 활용 가능한 넓은 군유지라는 특수조건이 있었다. 이익을 개인에게 배당하는 대신 마을 복지 재원으로 쓰는 등 주민들의 협력을 이끌어 낸 과정에서 배울 점도 많다. 하지만 금리 인상이나 전력 판매단가 하락 시 마을 복지 재원의 축소를 가져올 구조적 취약성이 있고, 만에 하나 채무불이행으로 이어질 경우 마을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는 극단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 농촌 태양광 지원 정책 대부분이 이런 부채경제에 기반한다. 이는 자기자본 10%만 있으면 90%를 대출받아 집도 짓고 건물도 올릴 수 있게 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모델과 똑같다. 부동산 PF는 부동산 가치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가정 하에 미래 현금 흐름과 사업성에 따른 투자 수익에 기반한 것인데, 이것을 에너지에 적용하면 재생에너지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가정이 필수다. 농촌의 재생에너지 판매 소득이 증대하려면 시장가격이 계속 올라야 하고, 이는 전기요금과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농업 생산에 필요한 다른 비용을 상승시켜 농가소득 감소와 부채의존도를 높인다. 대출은 상환일이 도래하고 금리는 변동한다. 농지와 전기, 부채의 얽힘은 위험하다. 금융종속이 심화될수록 에너지 자립과 식량주권은 멀어진다. 식량 생산의 기반인 농촌이 에너지 산업의 하부 기지가 되고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 예속된다는 것이 어떤 위험을 초래할지 이야기하고 대비해야 한다.
과거 지주들은 가난한 농민들에게 농지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 못 갚으면 그 땅을 빼앗았다. 지대 수입으로 배를 불리며 농민의 고혈을 짜내던 옛날이야기 속 악덕 지주, 탐관오리, 고리대금업자는 오늘날 은행, 보험회사, 자산운용사, 기관투자자 등 금융자본 및 이들의 이해에 복무하는 정부 관료, 공무원, 전문가, 싱크탱크로 바뀌었다.
기후위기 시대에 재생에너지 전환은 필요하다. 그러나 왜 그 전환의 책임을 농촌과 농민에게 먼저 지우는지, 왜 그 방식이 공공재생에너지가 아니라 에너지 사유화이며, 에너지를 금융자본의 증식을 위한 부채 생산의 수단으로 만들고 농민을 부채 수탈과 농지 약탈의 희생자로 만드는 방식인지 묻고 싶다. ‘햇살론’이 빈자에게서 이자를 뜯어가면서도 가난한 사람을 구원하는 빛인 양 묘사되듯이, ‘햇빛소득’도 마치 들판에 햇살이 내리쬐듯 농촌 살림을 피게 할 것 같은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빚은 빛이 될 수 없다. 농민은 빚내지 않고 농사지을 수 있는 세상, 농사만으로도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충분히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