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24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농협중앙회 국정감사에서 금품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강호동 회장이 그와 관련한 의원의 질의를 들으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오른쪽은 지준섭 부회장. 한승호 기자
* 지난 8월 13일 충남 서천군 장항농협 본점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 전국협동조합본부 주최로 열린 장항농협 조합장 사퇴 및 엄벌 촉구 기자회견. 전국협동조합본부 제공
* 지난 1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 앞에서 열린 ‘불법 비리 백화점 농협중앙회 규탄! 협동조합 정체성 회복! 농협대개혁 쟁취를 위한 노동자·농민 기자회견’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과 민주노총 사무금융서비스노조 전국협동조합본부 대표자들이 각종 비리에 얼룩진 농협을 규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커버스토리] 농협이 맞이한 최악의 위기…농협개혁 신호탄 되나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2025. 12. 7
강호동 농협중앙회장 금품수수 의혹부터 지역 농축협의 각종 사건·사고에 이르기까지, 최근 농협은 온갖 의혹 및 사건·사고로 바람 잘 날 없다. 농민조합원들로부터는 경제사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으며, ‘농민을 위한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을 의심받는다. 농협의 이미지와 정체성 측면에서 봤을 때, 농협조직은 역대급 위기를 겪고 있다.
# 민선 농협중앙회장 7명 중 6명이 각종 논란으로 검경 수사받아
지난 10월 15일, 서울경찰청은 강호동 회장이 제25대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앞둔 2023년 말 모 경비·미화 용역업체로부터 1억원 상당의 대가성 현금을 받았다는 혐의점을 거론하며 농협중앙회 본부의 강 회장 집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윗물’인 농협중앙회장부터가 각종 비리 의혹 또는 각종 사건·사고로 논란의 중심에 선 역사는 유구하다. 1988년 민선제(엄밀히는 조합장들에 의한 간접 선출) 도입 뒤 첫 민선 농협중앙회장을 역임한 고 한호선 농협중앙회장부터 원철희·정대근 전 회장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금품수수 및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됐고, 이후 농협중앙회장을 역임한 최원병·김병원 전 회장도 각각 측근 비리·불법대출 의혹(최 전 회장) 및 불법 선거운동 논란(김 전 회장) 등에 따른 검찰 수사를 받아야 했다.
말하자면 1988년 민선 농협중앙회장 선출 시작 이래 역대 회장 7명 중 6명이 최소 한 번 이상은 각종 비위 의혹으로 검찰 또는 경찰의 수사를 받았던 셈이다.
농업계 전반에선 농협중앙회장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원인으로, 회장에게 과도한 권력이 집중됨에도 그것을 견제할 장치가 마땅히 없다는 문제를 지적한다. 농협중앙회장은 농협중앙회 및 농협 양대 지주회사(경제지주, 금융지주), 계열사 등에 대한 인사권을 단행할 수 있으며, 사실상 지역농협의 생명줄과도 같은 무이자자금을 통제할 수 있는 주체다. 그러나 이토록 막강한 권한을 가진 농협중앙회장에 대한 이렇다 할 견제장치는 없다시피 했다.
농협중앙회장의 권력이 막강한 만큼, 역대 농협중앙회장 주변엔 무분별한 이해관계자들이 꼬이는 상황도 다수 발생했다. 온갖 이해관계자들이 몰리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금품 거래가 발생하기도 했고, 회장 역시 농협중앙회장 선거 과정의 ‘공신’들을 챙기고자 보은 인사를 남발하며 온갖 인사 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 온갖 사건·사고 빈발하는 지역농협…농협중앙회 감독 기능 사실상 ‘실종’
‘윗물’이 흐려지면 ‘아랫물’도 자연스레 흐려진다. 최근 지역 농축협 단위에서도 온갖 추문과 사건·사고가 빈발하는 상황이다. 그중 극히 일부나마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지난 10월 24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가 진행한 농협 대상 국정감사에선 서울의 한 지역농협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곳은 최근 조합원 대상 선심성 ‘골드바 지급’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서울 중앙농협이다. 이날 농해수위 위원들은 “농협 업무추진비로 골드바를 구입해 조합원들에게 지급한 조합장을 농협중앙회에서 가만히 두는 게 맞냐”며 김병수 농협중앙회 조합감사위원장을 강하게 질타했다.
충남 서천군민들의 경우 장항농협 조합장이 직원 대상 성추행·갑질 행위를 저질러 왔다며 지난 5월과 8월 규탄 집회를 열었다. 역시 농협중앙회에서 장항농협 대상 감사를 진행하긴 했지만, 5월 감사 뒤 현재까지도 농협중앙회는 장항농협을 향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사건·사고로 농민조합원을 기막히게 하는 수많은 지역농협이 존재한다. 그러나 문제는 농협중앙회가 이러한 지역농협들에 대한 관리·감독 행위를 사실상 방기하다시피 한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판단이 날 때까지 농협 자체적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판단(조합장 대상 징계조치 등)을 한없이 미루는 가운데, 조합장에게 성폭력 또는 갑질을 당했던 피해자 및 농협개혁을 촉구하는 농협 조합원들의 농협중앙회를 향한 분노는 커져만 가고 있다.
# “농민은 볏값 1000원 올리려 아우성, 농협 임직원 봉급은 매년 상승”
온갖 사건·사고로 지면에 농협의 이름이 오르내리더라도, 최소한 농민조합원을 위한 경제사업이라도 잘한다면 그나마 조금은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을 테다. 그러나 농민조합원들로서도 농협을 향해 주저 없이 낙제점을 내놓는 상황이다.
지난 1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하원오, 전농)·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전국협동조합본부(본부장 김덕종)가 농협중앙회 본부 앞에서 개최한 ‘불법·비리 백화점 농협중앙회 규탄! 협동조합 정체성 회복 및 농협대개혁 쟁취를 위한 노동자·농민 기자회견’에 참가한 길병문 전농 경기도연맹 의장은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최근 제가 몸담은 지역농협 대의원총회에선 농협이 직원 봉급과 조합장 연봉을 조합원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5% 인상했다. 농민들은 말 그대로 볏값(40kg당) 1000원, 2000원이라도 올려달라고 그렇게 아우성치고 투쟁해도 소용없는데 농협 임직원들은 마음대로 봉급을 올리고 있다. 농민은 이런 상황을 어디다 하소연해야 하나? 인건비, 기름값, 비룟값 다 오르는데 농산물 가격은 하락한다. 농협은 이제라도 농민을 생각하는 농협이 돼야 한다.”
이용희 전농 협동조합개혁위원장 은 농협중앙회가 ‘범농협 혁신 TF’를 구성하는 등 나름의 농협조직 쇄신안을 마련 중인 상황을 거론하며 “범농협 혁신 TF 위원장이 ‘부당대출 관련 영향력 행사 논란’으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지준섭 농협중앙회 부회장이라는 것이 말이 되나. ‘개혁 대상’인 사람이 ‘개혁의 주인공’을 자임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 그때 그 농협법 개정안, ‘셀프연임’ 내용 빼고 보니 달라보이네
농민·노동자가 한목소리로 최근 농협의 행보를 규탄하는 건, 그만큼 농협조직이 큰 위기에 처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며, 농협의 위기는 농업·농촌·농민의 위기로 이어진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격언대로, 농협의 위기는 농협개혁을 위한 새로운 기회가 왔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새로운 기회가 왔음을 보여주는 징표 중 하나는, 개혁적 내용이 담긴 농협법 개정안이 최근 순조로운 발걸음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 4일, 국회 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에선 윤준병·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농협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 중 윤준병 의원 발의안의 경우, 지난 2023년 이성희 전 농협중앙회장이 본인의 농협중앙회장 연임을 가능토록 하는 조항(‘셀프연임’ 조항)을 포함시켜 논란이 됐던 농협법안에서 셀프연임 조항만 삭제한 채 재발의한 법안이다. 당시에도 농업계 전반에선 문제의 농협법안이 ‘셀프연임 조항만 제외하고 보면 개혁적 내용이 많이 담긴 법안’이라 아깝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던 만큼, 이번 법안소위에서 윤 의원의 개정안이 통과됐다는 건 ‘셀프연임 조항 안 묻은 개혁적 성격의 농협법 개정안’이 통과됐음을 의미한다.
윤 의원 발의안의 주요 내용은 △비상임조합장 연임 최대 2회까지 제한 △도시농협의 농촌농협 농산물 판매 활성화 위한 자금지원 근거 마련 △신용매출 총이익의 3% 범위 내 도농상생사업비 납부 △지역농협 내부통제기준 설정 의무 부과 및 준법감시인 1명 이상 의무 배치 △농업지원사업비 부과 상한 최소 2.5→5%로 상향 등이다.
임미애 의원 발의안의 경우 △자산규모 500억원 이상 지역농협의 경우 2년마다 외부회계감사 의무화 △자산규모 일정 규모 이상 지역농협의 경우 매년 외부회계감사 의무화(규모는 시행령에서 설정) 등의 내용을 담았다. 윤 의원, 임 의원 공히 지역농협에 대한 외부 관리·감독을 강화하게 만드는 내용을 적잖이 담은 셈이다.
한편 이성희 전 회장 재임 당시 그토록 ‘셀프연임’ 내용이 포함된 농협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밀어붙였던 농협중앙회는, 당시 법안에서 ‘셀프연임’ 내용만 빠졌을 뿐인 윤 의원 발의안에 대해선 사실상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 농식품부·전농에 농협 문제 제보하세요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 농식품부)는 최근 ‘농협 관련 익명제보센터(익명제보센터)’를 운영함과 함께, 현재 농협조직 대상 특별감찰을 진행 중이다. 익명제보센터에선 오는 12일까지 농협중앙회와 지역 농축협 등 농협조직의 각종 부정부패 사례 및 문제점에 대한 제보를 받을 계획이다. 농식품부 농업금융정책과 차원에서 농협 문제 관련 제보를 받은 적이 없던 건 아니나, 작정하고 별도의 ‘익명제보센터’를 운영하며 적극적으로 관련 사례를 제보하라고 홍보하는 건 전례 없는 일이라는 게 윤원습 농식품부 농업정책관의 설명이다.
한편 민간 단위에서도 전농이 농협 관련 제보를 받기 시작했다. 농식품부 익명제보센터의 경우 직접적인 증명자료를 첨부하라고 요청하는 반면, 전농에선 증명자료를 제출하기 어렵더라도 구체적 정황 설명이 가능하다면 기탄없이 농협 관련 문제를 제보해도 좋다는 입장이다. 민·관 공히 운영 중인 농협 관련 익명제보센터를 통해,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농협조직의 문제가 더욱 다양하게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