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소비자 상생 위한 농산물 가격 대책은]
(3)·끝 바뀐 ‘농안법’, 가격안정정책 패러다임 변화할까
‘가격안정제’ 통해 가격위험 낮춰
발동 기준가격 자의적 설정 우려
적용 품목 적으면 생산 쏠릴수도
계약거래 이행 단체 손실시 지원
“조직화 병행돼야 활성화” 제언
정책심의위서 생산자 논의 중요
농민신문 양석훈 기자 2025. 12. 16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물가안정을 위해선 단기적 농산물가격 때려잡기보다 계약거래를 활성화해 수급안정을 도모하고 농가가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게끔 일정 수준의 농산물가격을 보장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생산 기반을 위축할 수 있는 수입 확대가 농가와 충분한 교감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주목되는 건 이같은 대안이 올 8월 개정된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점이다. 바뀐 법이 내년에 시행되면 가격안정정책 패러다임도 변화할까.
새 ‘농안법’은 긴 논의를 거친 만큼 바뀐 내용도 많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농산물가격안정제’ 도입이다. 개정 농안법은 사전 수급조절 노력에도 불구하고 특정 농산물의 가격이 기준가격보다 하락하면 정부가 차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농가에 보전하도록 했다. 이 제도는 가격위험을 낮춰 농가경영을 안정화한다는 취지에서 논의돼왔다.
관건은 제도를 발동시키는 기준가격이다. 바뀐 법은 ‘생산비와 수급상황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기준가격을 정하도록 했다. 초반 논의에서와 달리 ‘평년 시장가격’이라는 표현이 빠지면서, 기준가격이 높은 쪽이든 낮은 쪽이든 자의적으로 정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서진교 GSnJ 인스티튜트 원장은 “기준가격이 시장가격과 연동되지 않고 자칫 정치권 압력 등에 따라 정해지면 제도가 (과잉생산을 부추기는) 가격지지로 흐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에선 기준치가 너무 낮게 설정돼 제도가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을 걱정한다. 전종덕 진보당 의원(비례대표)은 “양파는 2007년부터 2021년까지 생산비가 시장가격보다 높은 해가 한번도 없었다”면서 “생산비만으로 기준가격을 정하면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것이기에 평년가격에 생산비 등을 더해 기준가격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제도가 충분히 많은 품목에 적용되지 않을 경우 특정 품목에 생산이 쏠릴 가능성도 있다. GSnJ 인스티튜트는 ‘농산물가격 및 농가경영안정 정책 방향과 대안’ 보고서에서 “전체 경작지의 상당 부분이 이 프로그램의 대상이 돼야 재배면적이 동시에 안정된다”고 짚었다.
가격안정의 또 다른 축으로 꼽히는 계약거래도 ‘농안법’ 개정을 통해 활성화 근거가 마련됐다. 바뀐 법은 농림축산식품부가 매해 계약거래 목표 및 시행계획을 세우고, 특히 농협 등 생산자단체가 계약거래 이행으로 손실을 보는 경우 이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김동환 농식품신유통연구원장은 “일본처럼 계약단가가 시장단가보다 떨어졌을 때 손실을 보상하는 제도가 도입되면 계약거래 활성화를 기대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구매자가 요구하는 규격과 품질의 물량을 공급할 수 있도록 산지조직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이광형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상당수 밭작물은 얼마나 생산되고 소비되는지 파악조차 안된다”면서 “농협 등이 컨트롤타워가 돼서 공동생산하고 판로를 개척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실제 농식품부에 따르면 농협을 통한 계약거래 비율(2024년 기준)은 대파·양배추가 5∼9%, 배추·무·마늘·양파·고추가 15∼25%, 당근이 30% 수준인데 지역화와 조직화가 잘된 품목일수록 비율이 높았다.
바뀐 ‘농안법’은 저율관세할당(TRQ) 증량과 할당관세 적용 등을 심의하는 농산물무역정책심의위원회에 생산자단체 참여(전체 위원회 3분의 1 이상)도 확대했다. 다만 현장에선 구색 갖추기로 끝내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감사원에 따르면 2022년 7월∼2024년 9월 열린 TRQ·할당관세 관련 22차례 심의회는 모두 서면으로 처리됐다. 마늘·생강·양파 증량처럼 중요한 안건도 근거자료 없이 간략한 명세만 제출됐다.
강선희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방침을 정하고 농가엔 통보만 하는 요식행위로 심의위원회가 기능해선 안된다”면서 “가격을 안정화한다고 할 때 그 기준가격은 무엇인지, 거기에 농가의 생산비는 충분히 반영됐는지부터 생산자와 논의하며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