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가락시장에 외국산 신선당근이 상자째 쌓여 있다. 상자 겉면에 큼지막한 한글로 ‘신선당근’이라고 적혀 있지만 중국산이다.
기준가 없어져 일부업체 자행
현지 단가보다 절반이상 낮춰
가격 왜곡으로 시장교란 우려
“값 등락 커 지정 해제 신중히”
농민신문 서효상 기자 2026. 2. 24
수입당근 중 상당량이 통관 과정에서 저가로 신고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외국산 당근 대부분은 중국산인데, 최근 중국 현지 단가보다 수입신고 단가가 최대 절반 이상 낮다는 것이다. 유통인은 “지난해 관세청이 사전세액심사 대상품목에서 당근을 지정 해제하면서 수입시장이 교란됐다”며 “농산물의 사전세액심사 지정 해제는 보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목청을 돋웠다.
◆기준가격 없어지자…저가신고 횡행=당근 수입업체와 국내 유통인들에 따르면 최근 2∼3개월간 중국산 당근 현지 가격은 1t당 530∼580달러로 껑충 뛰었다. 이전과 비교해 두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10∼11월까지만 해도 외국산 당근의 담보기준가격은 1t당 280∼290달러에 그쳤다.
담보기준가격은 수입업체가 수입신고 수리 전 물품을 반출하고자 할 때 제공해야 하는 담보액을 계산하는 데 쓰는 품목별 기준가격이다. 수입신고 단가와 생산국 현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관세청이 매월 1일과 16일 발표한다. 외국산 농산물 현지 가격이 오르면 담보기준가격도 같이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관세청은 당근을 사전세액심사 대상품목에서 지정 해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준가격이 사라지자 일부 수입업체가 중국산 당근을 저가신고하기 시작했다는 게 유통인들의 주장이다. 저가로 신고하면 수입업체는 관세를 적게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 현지 가격 수준(1t당 580달러)으로 신고하면 내야 할 관세(신선당근 기본 관세율 30% 적용)는 174달러다. 이를 절반 수준인 290달러로 저가신고하면 관세도 절반인 87달러로 줄어든다. 원달러 환율 1400원을 적용하면 1t당 12만1800원을 세금 포탈에 따른 부당 이득으로 챙길 수 있는 셈이다. 일반적인 수입 컨테이너 기본 용량(20t)으로 환산하면 243만6000원에 이르는 적지 않은 액수다. 외국산 당근 시장 내 가격 왜곡 현상도 저가신고의 부작용 중 하나다.
◆농산물은 가격 등락폭 커…사전세액심사 제외 신중해야=관세청은 왜 당근을 사전세액심사 대상품목에서 지정 해제한 것일까. 관세청이 꺼내든 이유는 ‘관세법’ 시행규칙이다. 이 법 시행규칙 제8조 제1항 제5호에 따르면 수입신고 수리 전 세액심사 대상품목은 ‘가격변동이 크거나 수입신고 수리 후에 세액을 심사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인정해 관세청장이 정하는 물품’으로 규정한다. 관세청 관계자는 “외국산 당근은 가격변동이 적다고 판단해 지정 해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산 당근 가격은 지난해 11월 이후 시세가 그전보다 두배가량 급등했다. 중국 현지에선 수년간 당근값이 낮아 적자가 누적된 농가들이 당근 재배를 포기한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여기에다 지난해 가을 중국 산둥성 지역에 비가 많이 내리면서 2025∼2026년산 당근 생산량이 급감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됐다.
수입업체 관계자는 “중국에서 당근은 다른 품목과 견줘 기업 영농화가 빠르게 되면서 경쟁이 붙어 최근 몇년간 과잉생산됐다”며 “그러다 올해 기업들이 당근농사에서 손을 떼면서 생산량이 급감해 산지 가격이 1t당 500달러 이상으로 오르는 기현상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국내 수입 농산물 규모가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사전세액심사는 국산 농산물값을 지지하고 공정한 수입시장을 만드는 데 최소한의 장치인 만큼 대상품목 지정 해제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재배면적과 작황에 따라 가격 등락폭이 큰 신선농산물 특성상 사전세액심사를 통한 지속적인 수입관리가 필요하다”며 “사전세액심사 대상품목에서 성급하게 제외하면 이번 사례처럼 곧바로 저가신고 등 시장 왜곡이 생길 수 있으니 지정 해제는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용어설명] 사전세액심사
수입신고 수리 전에 시행하는 세액심사 제도. 원칙적으로 모든 물품은 수입신고 수리 후 세액을 심사하지만, 관세법 제38조 제2항에 따라 신고한 세액에 대하여 관세채권을 확보하기가 곤란하거나, 이같은 ‘사후심사’가 부적합하다고 인정되는 물품에 한해 사전세액심사를 진행한다. 관세법 시행규칙 제8조에 따르면 사전세액심사 대상 물품은 ▲법률 또는 조약에 의해 관세 또는 내국세를 감면받고자 하는 물품 ▲관세를 체납하고 있는 자가 신고하는 물품 ▲물품의 가격변동이 커 수입신고 수리 후에 세액을 심사하는 것이 적합하지 아니하다고 인정해 관세청장이 정하는 물품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