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여름 집중호우에 하천 제방이 터져 막대한 침수피해를 입은 경남 산청군 신안면 청현리 딸기 재배 단지에서 유승현 한농연산청군연합회 회장이 딸기 육묘장의 어미묘 작황을 설명하고 있다. 복구작업을 서둘렀지만, 어미묘 삽목 작업이 적기를 훨씬 지나 추워진 11월 20일에야 이뤄지면서 잔뿌리 발육이 더디어지는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불타고 마르고 물에 잠기고…
삶의 터전 송두리째 잃고
농사·생계 걱정에 잠못이뤄
반복될 이상기후 대책 시급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2025. 12. 23
2025년 한 해 동안 농어촌은 사계절 내내 기후재난의 최전선에 놓였다. 겨울에는 폭설로 비닐하우스와 축사가 무너졌고, 봄에는 대형 산불이 마을과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태웠다. 여름에는 기록적인 폭우와 고수온이 이어졌고, 가을에는 때 아닌 장마가 농민들을 괴롭혔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런 물음을 안고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서 한국농어민신문은 폭설·대형 산불·극한 가뭄·가을장마 피해 현장을 차례로 다시 찾았다. 현장에서 만난 농어민들은 기후재난 당시의 충격을 생생히 기억하며 그날의 처절했던 사연들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길게는 1년, 짧게는 몇 개월 전에 벌어졌던 기후재난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일상이 돼 버릴지 모를 기후재난에 대한 트라우마 역시 깊게 남아 있다.
지난겨울, 유례없는 폭설은 시설농업 현장을 무참히 무너뜨렸다. 평택에서 34년째 오이와 방울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는 임성남 씨는 폭설로 1만3200㎡ 규모의 비닐하우스 20개 동과 각종 재배시설이 붕괴되며 20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임 씨는 “보험사와의 갈등, 공사 관계자들과의 마찰, 농사를 짓지 못하면서 오는 자괴감, 생계와 복구비 마련을 위한 대출 부담까지 1년여 동안 너무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며 “앞으로 반복될 이상기후에 따른 농사 걱정과 생계 불안이 더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봄, 영남권을 휩쓴 대형 산불의 상처도 여전히 현재형이다. 전체 사과밭 1만2000평 가운데 8700평이 전소돼 올해 수확을 사실상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경북 안동의 정희호 씨는 “내년 농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당장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대출을 받아 창고부터 다시 짓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여름, 자연재난으로는 처음으로 정부 재난사태가 선포된 강릉을 비롯한 영동권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여름철 수확해야 할 배추가 여전히 밭을 떠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현장은 그날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배추 농사를 짓는 안혁래 씨는 “상품가치를 잃어 팔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까워 뽑아낼 수도 없었다”며 “기후재난은 농민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인 만큼, 정부가 기후에 맞는 품종 개발과 육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가을, 그렇게도 여름 내내 기다리던 비는 번지수를 달리해 찾아왔다. 수확기를 맞은 벼와 콩 등 주요 식량작물 재배 농가들은 잦은 비로 수확 시기를 놓치고 수확량이 급감했다. 깨씨무늬병 확산 등 병해충 피해도 겹쳤고, 가을장마의 후폭풍은 경종 농가를 넘어 축산 농가로까지 번지고 있다.
벼 재배농가이자 한우 농가인 서정범 한국후계농업경영인 담양군연합회장은 “가을장마로 수확이 늦어지고 도복이 발생하면서 깨씨무늬병까지 크게 확산돼 수확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며 “하지만 농업재해로 인정된 깨씨무늬병에 대한 보상 기준과 절차는 현장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지적했다. 벼 수확 지연은 곧바로 볏짚 부족으로 이어졌다. 서 회장은 “볏짚 곤포 사일리지 1개 가격이 7만원 선에서 형성되던 것이 최근에는 9만~10만원까지 올랐다”며 “가을장마의 후폭풍은 경종 농가를 넘어 축산 농가로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의 농어민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돌아보고 싶지 않지만, 돌아봐야 한다”고. 그래야 올해의 기후재난이 체념의 기억으로 끝나지 않고, 제도 개선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25 농어촌 기후재난 보고서’를 통해 재난이 일상이 된 농어촌의 현재를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