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한국농어민신문] [2025 기후재난 보고서] 말라 죽고 썩어간 무·배추···올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202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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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운 계절이 다가왔지만, 강릉시 구정면 한편에는 수확하지 못한 배추밭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가뭄에 말라붙고 폭우에 물러버린 배추는 올여름 농민들이 겪은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강릉 덮친 ‘극한 가뭄’의 경고


심은지 사흘 만에 바싹 마르고

종자 다시 심기-피해 반복하다

이어진 비에 병해로 다 잃어


식수조차 부족한 가뭄에

농작물 물대기 못하고 냉가슴

제대로 된 보상도 없어 답답



한국농어민신문 홍란 기자 2025. 12. 23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 한편에는 지난여름 극심한 가뭄과 그 뒤를 이은 폭우로 끝내 수확하지 못한 배추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상품가치를 잃어 팔 수도, 그렇다고 아까워 뽑아낼 수도 없었던 배추는 밭에 남겨진 채, 그 여름 농사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지난 15일 현장에서 만난 구정리 이장 안혁래 씨는 “가뭄이 장기간 이어졌고 더위도 몹시 심했다”며 “강릉 구정면이 39.6도를 기록해 전국 최고기온을 찍은 날도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지난여름 강릉시는 극심한 가뭄으로 가정용 물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이도록 했고, 이후에는 75%까지 절수 조치가 이어졌다. 정부는 자연재난 최초로 재난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문제는 농사였다. 김장을 앞두고 무와 배추를 심었지만, 심은 지 사흘도 채 지나지 않아 바싹 말라 죽기 일쑤였다. 종자를 다시 사고 인력을 투입하는 일이 반복됐다. 식수나 지하수를 끌어다 겨우 작물을 살려냈지만, 추석 무렵부터 상황은 또 한 번 뒤집혔다. 20일 넘게 이어진 비로 배추밭에는 무름병이 돌았고, 뿌리는 물에 잠긴 채 썩어 들어갔다. 안 이장은 “강릉에서 배추를 심어 제대로 수확한 농가는 한 곳도 없었다”며 “몇 만 평씩 농사짓던 농가들은 수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말했다.

논농사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른 벼인 해들미는 비교적 일찍 수확을 마쳤지만, 늦벼인 알찬미는 추석 이후 계속된 비로 수확 시기를 놓쳤다. 수발아가 발생하며 등급이 크게 떨어졌고, 현장에서는 “인건비 정도나 건지는 수준”이라는 말이 나왔다. 안 이장은 “가뭄까지는 행정과 주민들의 공동 대응으로 어떻게든 버텼지만, 비가 오면서 하나씩 썩어 들어가는 농작물을 보며 농민들 마음도 같이 썩어 들어갔다”고 했다.

안혁래 이장을 만난 직후 찾은 구정면 여찬리 김황석 씨의 밭에서는 내년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말라버린 대파밭을 갈아엎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김 씨가 거주하는 지역은 수로와 저수지 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었지만 가뭄 피해를 피하지는 못했다. 그는 “행정에서 순차적으로 급수 일정을 정해주고 농민들이 협조하면서 큰 갈등 없이 넘기긴 했지만, 워낙 가뭄이 심해 수확을 제때 하지 못했다”며 “그래도 내년 농사를 지어야 해 밭을 갈아엎고 있다”고 말했다.

역대급 가뭄을 겪은 뒤 아쉬움도 남았다. 김 씨는 “가뭄 피해에 대한 적절한 후속 조치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가뭄 초기에 실태조사를 한다고 했지만 체감할 만한 조치는 없었고, 농민 피해에 대한 보상도 거의 없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재해보험과 관련해 “고령 농민들은 보험 적용 조건을 제대로 알지 못해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농민들은 이번 여름을 기후변화의 분명한 경고로 받아들이고 있다. 안 이장은 “대한민국이 아열대 기후로 접어드는 것 같다”며 “농민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인 만큼, 정부가 기후에 맞는 품종 개발과 육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씨 역시 “일기예보만 조금 더 정확해도 사전에 대비할 시간이 생긴다”며 “기상 정보의 정확성이 피해를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역대급 가뭄 이후 뒤늦게 내린 비는 이미 상처 입은 농사를 더욱 악화시켰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다시 논을 정비하고 밭을 갈아엎으며 다음 한 해를 준비하고 있다. 올여름 강릉의 가뭄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