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정읍의 고부보건지소 내 진료실에서 임경수 지소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시니어의사’ 제도 시행 1년 맞아
전북 정읍 보건소 전국 첫 도입
진료건수·방문환자·취급약 늘어
질 높은 의료서비스 주민들 만족
정부지원 확대에도 채용 어려워
의사 수도권 몰려 취약지 인력난
사학연금도 못받아 재취업 꺼려
농민신문 정읍=윤슬기, 이시내 기자 2025. 11. 26
25일 전북 정읍의 고부보건지소엔 아침 일찍부터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러 온 주민, 혈압약을 타러 온 주민뿐 아니라 의료 고민상담을 하러 온 주민까지 각양각색이다.
고부면은 불과 1년 전까지 의료 불모지와 다를 바 없었다. 인구 절반 이상이 만65세가 넘어 의료서비스 수요가 큰 지역이지만 한의원만 한곳 있을 뿐 양방 병원과 약국은 전무했다.
송기평씨(67)는 “집 근처에 보건소가 있어도 의사가 없어 찾을 일이 없었다”면서 “약국조차 없어 아프면 무조건 시내나 전주까지 나가야 했다”고 털어놨다.
이런 곳에 2024년 11월 전국 최초로 ‘시니어의사’가 도입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은퇴한 임경수 응급의학과 교수가 시니어의사로 고부보건지소장을 맡자 주민들이 보건소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시니어의사 채용 전인 2024년 10월엔 의과 진료건수가 5건에 불과했지만 올 9월엔 265건으로 급증했다. 방문 환자가 늘면서 취급 약품도 증가했다. 8가지에 불과했던 처방약 종류가 70여가지로 확대돼 의원급 수준의 진료가 가능해졌다.
전연례씨(83)는 “병원 다니는 게 ‘일’이었는데 이제 웬만한 건 동네에서 해결할 수 있어 보건소에 많이들 온다”고 귀뜸했다.
시니어의사가 ‘지역 주치의’ 역할까지 하면서 의료서비스 품질도 높아졌다.
김양숙씨(74)는 “소화가 잘 안돼 왔는데 지소장님이 담낭 염증 우려가 있다며 차후 심해지면 가볼 만한 진료과도 소개해주셨다”며 “예전 같으면 이런 초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주민들은 이제 건강검진 때도 보건소를 찾는다. 검진 전엔 어떤 검사를 받을지 상담하고, 검진 후엔 결과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으러 온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앓는 주민들은 임 지소장의 ‘잔소리’를 듣기도 한다.
이에 정부도 예산을 지난해 대비 2배 이상 늘리는 등 시니어의사 지원사업을 확대하고 나섰지만 필요성과 높은 효과에도 불구하고 실적은 부진하다.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대전 서구갑)이 국립중앙의료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에는 34개 의료기관에서 79명, 올해는 9월 기준 58개 기관에서 99명의 시니어의사가 채용됐다. 2023년 사전 수요조사 당시 접수된 인력(724명) 대비 매칭률이 24%에 불과하다.
그나마 채용된 의사 대부분이 서울·수도권에 집중돼 취약지는 여전히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급여·주거 등이 걸림돌이라고 지적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전일제 근무 의사에게 월 1100만원, 시간제 근무 시 월 400만원을 지급하지만 수도권 요양병원 등에 재취업하면 더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어 충분한 유인책으로 작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니어의사가 되면 공무원 신분으로 전환되면서 사학연금을 받지 못하게 돼 경제적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전남도 보건복지국 관계자는 “60세 이상 은퇴 의사들이 가족과 떨어져 연고지가 아닌 시골 지역에서 근무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강력한 사명감이 없는 한 지원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시니어의사가 있는 지역도 운영이 녹록지 않다. 주민들이 오랫동안 보건소를 이용하지 않다보니 의사가 채용돼도 방문환자가 쉽게 늘지 않는 것이다.
임 지소장은 “나도 처음엔 하루 환자수가 5명 내외였다”면서 “시니어의사를 채용했다고 바로 엄청난 변화가 생기길 기대할 것이 아니라 제도의 필요성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