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함께 농심천심] (3) 다시 보는 ‘농업가치’
선진국, 식량 중심 농정기조 탈피
별도 법 조항으로 가치 인정 힘써
농촌여행·치유 등 국민 관심 증가
지속적 지원으로 기능 강화해야
개헌 반영되도록 공감대 마련을
농민신문 김해대 기자 2025. 12. 4
‘논멍요가를 아시나요?’ 논을 멍하니 바라보며 하는 요가를 뜻하는 이 이색 프로그램은 지난 11월 전북 김제시 죽산면에서 열린 ‘논바닥 마을잔치’에서 진행된 행사다. 논멍뿐 아니다. 숲과 밭·꽃을 바라보는 ‘숲멍’ ‘밭멍’ ‘꽃멍’ 명소 탐방이 농촌 여행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며 더 높은 가치를 원하는 국민들이 식량 생산 외에 농업이 가진 가치에 눈길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농협이 8월부터 펼치고 있는 ‘농심천심 운동’도 핵심 목표로 ‘농업·농촌 가치 공감·참여’를 설정하고 국민들에게 농업의 다양한 매력을 알려 나가고 있다.
◆국제기구가 인정하는 농업가치=수십년 전부터 선진국들은 농정 기조를 식량 생산에 한정하지 않고, 공익적 가치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왔다. 기존의 농정 방향으로는 인구감소와 고령화, 농촌 삶의 질 하락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농업·농촌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98년 농업 각료회의에서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본격 논의하기로 공동성명을 내고, 2001년 구체적인 정의를 내놨다. ▲경관 ▲종·생태계 다양성 ▲토양의 질 ▲농촌활력화 ▲식량안보 ▲문화유산 ▲동물복지 등 12가지 농업가치를 포함해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도 2007년 사회·문화·환경·식량안보·경제적 측면에서 다원적 기능을 13가지로 분류했다.
스위스는 아예 연방헌법 제104조에 ‘농업’ 조항을 두고, 농업의 공익적 가치 강화와 이에 대한 농민 보상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국민에 대한 안정적 식량공급, 자연자원 보존과 국토경관 유지, 지역 분산적인 인구분포를 위해 국가가 농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무를 담았다. 이에 따라 농민이 농업의 공익적 가치 유지를 위한 활동을 하면, 다양한 형태의 직불금을 지원한다.
국내에서는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이 농업의 역할을 식량공급, 국토환경 및 자연경관 보전 등 6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2020년부터 시행된 ‘공익직불제’가 이런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기반해 마련된 정책이다.
농업의 순기능을 보다 더 세밀하게 포착한 정책들도 있다. 경남도가 토종농산물 22개 품목의 보존·육성을 위해 시행하고 있는 ‘토종농산물 소득보전 직불제’가 대표적이다. 일본에서는 농림수산성 등이 ‘농복(農福)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층의 사회적 고립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파종·수확·선별·포장 등 규칙적인 농작업이 심리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 착안해 설계된 프로그램은 고립 청년과 전문상담사를 연결해 농작업을 체계적으로 알려준다. 실제 농가 취업이나 농협 보조 인력 채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농업이 ‘사회적 안전망’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농업가치 헌법 반영 추진=농협은 ‘농심천심 운동’으로 이같은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부가 추진 중인 개헌에 맞춰 농업가치를 헌법에 반영하는 데 총력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엔 농업·농촌에 대한 지속적인 정부 지원의 근거를 마련하고,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보상을 안정적으로 하려면 헌법에 ‘농업가치 보전 의무’가 명시돼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 깔렸다. 2017년 개헌 추진 과정에서도 농협은 농업가치 헌법 반영을 추진해 개헌안에 포함시켰으나 최종 표결이 불발되며 무산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당시 보고서에서 “헌법에 농업조항을 포함시키고 국가 농업정책의 목표와 과제를 명확히 제시하는 것은 국가의 구체적 입법이나 정책을 수립·시행하는 헌법적 근거를 확보한다는 뜻”이라며 “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사회적 수요가 늘고 있지만 시장원리에만 맡겨서는 바람직한 수준만큼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헌법에 이를 반영해 이념과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농협 미래전략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2025년 농업·농촌 도시민 인식 조사’에서도 ‘공익적 기능 강화를 위해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제에 80%가 긍정적으로 답했고, 헌법 반영의 필요성에 대한 물음에도 53.5%가 동의하는 등 토대가 형성되고 있다. 2017년 개헌 추진 당시 농업가치 헌법 반영에 찬성하는 국민이 87%에 달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향후 찬성 비율은 더 높아질 수 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내년부터 농업·농촌 경험이 부족한 세대를 대상으로 한 농업가치 알기 프로그램과 농촌 장단기 체류 모델, 농촌 경관 가꾸기 활동을 본격 가동할 것”이라며 “농심천심 운동과 연계해 농업의 공익적 가치가 헌법에 담길 수 있도록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