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한국농어민신문] [농업마당] 조용한 농정 개혁, 지금이 적기
202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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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때마다 단기 처방 정책효과 논쟁

친환경농업 전환·쌀산업 구조조정 등

농업 발전전략 직결…근본적 개혁 필요



김태연 단국대 교수 2026. 2. 20



지난 몇 년간 농산물 가격은 주요 일간지의 머리기사를 장식해 왔다. 대파 가격 논란, 사과와 배추 가격 급등, 쌀 가격 하락 등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민감한 이슈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런 논란이 격화될 때마다 이해관계자 간의 대립이 첨예해지면서, 정책적 해법은 쉽게 도출되지 못했다. 그 결과 생산자에게는 보조금을, 소비자에게는 할인쿠폰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예산을 투입하는 단기 처방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대응은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 안목을 담기 어렵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정책 효과를 둘러싼 논쟁이 되풀이된다. 종합적이고 일관된 농정 체계를 구축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에도 쌀 가격을 비롯한 농산물 가격 상승을 우려하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가시적이고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한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농업 문제가 상대적으로 조용한 지금이야말로, 우리 농업이 직면한 구조적 과제를 해결할 중장기 전략을 제시할 적기다. 특히 매년 반복되어 온 쌀 구조조정 문제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준비해 온 방안을 체계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우선 2024년에 발표된 ‘쌀산업 구조개혁 대책’의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추진이 요구된다. 당시 방향은 제시되었으나 세부 실행계획은 충분히 구체화되지 못했다. 재배면적 감축뿐 아니라 품질 고급화와 신규 수요 창출을 위한 정책을 정비하여 실행해야 한다. 아울러 전략작물직불제를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 콩과 가루쌀을 넘어 다양한 곡물로의 전환을 적극 유도해야 한다. 현재 쌀을 제외한 기타 곡물의 자급률은 약 12%에 불과하다. 식량자급률 제고의 핵심은 쌀이 아니라 다른 곡물 생산 확대에 있다. 이를 위해 잡곡의 안정적인 판로를 구축하고 가공·유통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다음으로 친환경농업으로의 전환을 보다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배출 저감과 환경 보전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한 상황에서, 환경친화적 농업으로의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비료와 농약에 의존하는 고투입 농업은 생산비를 증가시킬 뿐 아니라 토양 생물다양성과 생태계를 훼손해 농지의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린다. 친환경농업은 환경 보전과 쌀 생산량 조절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근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가 현실을 반영해 개편된 만큼, 정부가 초기 마중물 역할을 한다면 참여 농가 확대도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쌀 산업의 구조조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3.9kg으로 전년 대비 3.4% 감소했다. 기존의 감소 추세를 넘어서는 하락이다. 반면 벼 재배면적 감소 폭은 미미하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다시 쌀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구조적 과잉을 인지하면서도 관성적으로 재배를 유지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규모 고령농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일이다. 이들의 농업 생산이 식량안보나 쌀 산업 경쟁력 강화의 핵심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첨단 기술과 경영 역량을 갖춘 전문 농업인과 청년 농업인이 미래 농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반면 소규모 고령농의 역할은 지역 공동체 유지, 농지 관리, 전통 지식의 전수와 같은 공익적 기능과 연결되어야 한다. 이들의 생산물은 지역 내에서 유통·가공·판매되는 로컬푸드 체계 속에서 순환하는 구조로 자리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이들은 지역의 중요한 소비 주체이기도 하다. 로컬푸드를 소비할 뿐 아니라 복지·문화·교육·여가 서비스의 수요자로 기능한다. 이들의 지역 내 소비가 확대될 때 농촌 순환경제가 형성되고, 그 위에서 청년의 창업과 정착도 가능해진다. 결국 쌀 농업의 구조조정은 단순한 산업 조정이 아니라 농촌 발전 전략과 직결된 과제다.

지금은 농정이 조용한 시기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인 개혁을 설계할 수 있는 시간이다. 위기가 닥친 뒤의 땜질식 대응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차분한 개혁이 필요하다. 지금이 그 적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