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배추·구근류 등을 주력으로 취급하는 채소2동은 손님이 뚝 끊겨 한산한 모습이다.
* 남촌농산물도매시장 모식도. 과일동과 채소1동 사이 대규모 주차장이 배치돼 있고 양쪽을 드나들며 상품을 구매할 수 있지만 채소2동의 경우 고립돼 있는 것처럼 설계돼 고객 접근성이 떨어진다.
* 채소2동 중도매인 남승재 씨가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 채소2동 전경.
채소2동 점포 36% 폐업·영업중단
중도매인, 인천시 상대 소송 제기
설계 오류로 ‘빈익빈부익부’ 심화
한국농업신문 박현욱 기자 2026. 2. 6
인천 남동구 남촌동에 위치한 남촌농산물도매시장. 무·배추·구근류 등을 주력으로 취급하는 채소2동 점포는 한겨울처럼 분위기가 얼어붙어 있었다. 점포 곳곳에는 셔터가 내려가 있었고, 손님 발길은 끊긴 채 빈 공간만 길게 남아 있었다. 현장에서는 “3년째 발길이 끊겼다”는 말이 반복됐다.
정부가 약 3200억원을 투입해 인천 구월동 구월농산물도매시장을 이전·현대화한다는 명목으로 2020년 3월 이곳 남촌동에 ''남촌농산물도매시장''을 개장했지만, 개장 6년 만에 채소2동은 ‘유령점포’가 속출하는 구역으로 변했다는 게 중도매인들의 주장이다. 채소2동 점포 98개 가운데 폐업 또는 사실상 영업 중단 상태에 놓인 곳은 36%에 달한다.
“이곳도 문 닫았어요. 여기도 닫고요.” 채소2동에서 만난 중도매인들은 점포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도매시장을 새로 지어놓고 결과적으로 채소2동만 괴멸 직전입니다.” 매출이 반토막 났다는 호소도 이어졌다. 일부 중도매인은 “2018년 구월동 시절 20억원 안팎이던 매출이 12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 공간이 매출을 결정…중도매인 양극화 심화
당초 도매시장이 개장할 때 채소2동 중도매인들은 배추·무·구근류 등 주력 품목을 채소2동에서만 판매하도록 약속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설자인 인천시가 품목별 분리 운영 원칙을 사실상 이행하지 않으면서 채소2동이 급속히 낙후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채소1동과 과일동은 중앙 주차장과 맞물려 고객 동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반면, 채소2동은 옹벽으로 둘러싸여 접근성이 떨어지고 집객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에서는 “반지하에 가깝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문제는 이러한 불리한 위치가 단순한 ‘입지 차이’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채소2동은 무·배추·대파·감자 등 특정 품목 비중이 높아, 한 번 손님이 끊기면 대체 품목으로 버틸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반면 채소1동은 취급 품목이 다양해 고객이 몰릴수록 ‘구색 효과’가 커지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상권 격차가 확대되며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고착화됐다는 것이 채소2동 중도매인들의 주장이다.
◇ “품목 분리 약속” 공방…결국 소송으로
이 같은 갈등은 결국 법정으로 이어졌다. 채소2동 중도매인 남승재 씨는 최근 인천광역시를 상대로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에서 남 씨는 채소1동과 채소2동이 ‘품목별 분리 운영’을 전제로 설계·배치됐고, 자신을 포함한 채소2동 중도매인들이 불리한 위치를 수용한 것도 “채소1동에서는 무·배추 등 채소2동 품목을 취급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행정 원칙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장 이후 단속이 흐지부지되면서 채소1동에서 무·배추 등 채소2동 품목 취급이 확산됐고, 그 결과 채소2동 상권이 붕괴돼 손해가 발생했다는 논리다.
채소2동 중도매인들은 “이동(점포 위치)은 못 하게 막아놓고, 품목은 침범당하게 방치했다”고 주장한다. “처음에는 단속이 되는 듯했지만, 2022년 이후 ‘단속 권한이 없다’는 말이 퍼지면서 2023~2024년부터 상황이 급격히 악화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 인천시 “확정적 약속 없었다” 해명
이에 대해 인천시는 채소1동·2동 구분이 “비산먼지, 부피, 물류 보관·환경 관리 등을 고려한 시설 운영 차원의 설계 결과”라는 입장이다. 인천시 남촌도매시장 관리소 관계자는 “판매 품목을 제한하는 영업 규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라며 “품목 제한 조치를 확정적으로 하겠다고 중도매인들에게 표명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판결이 나온 바 있다”고 밝혔다.
점포 배정과 관련해서는 “도매법인 거래 통계 등을 통해 주거래 품목군을 분류한 뒤, 각 동의 정원 범위 내에서 무작위 추첨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농안법상 중도매인은 부류(청과부류) 단위로 허가를 받는 구조여서, 품목 단위로 쪼개 제한하는 데 법적 한계가 있다”며 “과거에도 1·2동 간 합의를 통해 운영 개선을 시도했으나 최종적으로 결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 잘못된 설계, 막대한 사회적 비용 되돌아와
채소2동 침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품목 분리 약속이 있었는지를 둘러싼 공방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공공이 설계한 유통 인프라가 기능을 충분히 검증하지 못한 채 운영 단계로 넘어갈 경우, 그 부담이 고스란히 유통인 간 갈등으로 전가된다는 점이다.
복수의 농산물 유통 전문가들은 “수집과 분산이라는 도매시장 본래 기능을 뒷받침할 동선과 배치가 잘못 설계되면, 피해는 특정 구역 상인에게 집중되고 시장 전체의 거래 질서도 약화된다”며 “남촌도매시장 채소2동에서 벌어진 ‘유령점포’ 확산과 소송전은, 잘못된 도매시장 설계가 결국 유통인 분열과 장기 갈등, 그리고 막대한 행정·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온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