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과잉개입 시장왜곡 자초
외식업계 수입양파 의존 고착
국산 비축물량 2만t 폐기 수순
조생양파 출하전 격리요구 확산
농민신문 서효상 기자 2026. 2. 3
외국산 양파가 국산 시세를 넘어서는 ‘가격 역전’ 일수가 한달의 절반을 초과하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국산 비축 양파 2만t을 폐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산지와 유통업계에선 “국산 양파값 지지를 위해선 정부 비축물량을 격리하는 것이 최선”이라면서도 국내 양파시장이 이 지경까지 온 데는 정부가 저율관세할당(TRQ)을 과도하게 적용하는 등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한 것이 패착이었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 망가진 양파시장…“비싸도 수입 양파 쓴다”
상당수 양파 유통인들은 시장에서 국산보다 외국산이 더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이 고착화됐다고 평가한다. 외식업계나 식자재업체를 중심으로 값이 비싸도 외국산 양파를 찾는 고정 수요처가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들어 1월 한달간 서울 가락시장 양파 거래일수는 25일이었다. 이 중 외국산 양파가 국산보다 높은 값에 거래된 날은 21일(84%)에 달했다. 국산이 앞선 날은 4일뿐이었다.
이런 가격 역전 현상이 올해만의 일은 아니다. 2023년 1월에도 거래일수 25일 중 22일이 외국산 양파가 더 비싸게 경락됐다. 지난해 기준 연간 국내로 들어온 외국산 양파의 99.4%는 중국산이었다.
전문가들은 소비시장에서 국산 양파는 최소 10년간 꾸준히 경쟁력을 잃어왔다고 진단한다. 인구 구조 등의 변화로 양파 소비시장에서 가정용 시장은 점차 위축된 반면 업소용(외식용) 시장은 커졌는데, 이 업소용 시장을 정부 지원에 힘입은 외국산이 야금야금 잠식했다는 것이다.
가락시장 관계자 A씨는 “중국산 양파는 대체로 국산보다 알이 크고 단단하다”며 “2023년 당시 정부가 TRQ와 할당관세 수입물량을 확대하면서 중국산 양파 사용처가 크게 늘었고, 이후에도 가공 수율이 높은 중국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꾸준히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 ‘처치 곤란’ 된 비축물량…산지·유통인 “그래도 격리해야”
가격 역전 현상이 길어지면서 정부가 지난해 가을 수매·비축해둔 국산 양파 2만t은 ‘애물단지’ 신세가 됐다. 정부는 지난해 수매·비축에 400억원 이상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폐기하는 데는 최소 50억원이 추가로 들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국산 양파 시세가 저조한 상황에서 시장에 풀면 국산 시세가 더욱 곤두박질쳐 올해산 햇조생종 양파 시세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만큼 ‘폐기 불가피론’이 힘을 얻는다.
업계에선 3년 전 2023년 정부가 중국산 신선양파에 TRQ와 할당관세 적용을 확대한 것이 문제를 키웠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 TRQ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연간 물량 계획을 정한 뒤 수급 상황에 따라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시행 지침을 내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계획된 연간 TRQ 물량을 국내 수입했는데도 수급이 불안정하면 추가 긴급조치로 시행하는 것이 할당관세다.
aT에 따르면 2023년 TRQ(6만5180t)와 할당관세 수입물량(1만9904t)은 모두 8만5084t으로 집계됐다. 일반 수입물량(3만1991t)의 2.6배에 달한다. 신선양파에 적용되는 일반관세는 135%다. 정상적으로 고율관세를 물고 들어온 물량이 저율관세 혜택을 본 물량의 절반도 안되는 것이다. 2025년에도 국내에 들어온 외국산 양파 중 TRQ 물량은 2만89t에 달했다.
TRQ로 양파 수입량이 늘어나면서 이 물량은 외식·식자재업체의 고정 식자재가 됐다. 산지출하조직 관계자는 “15㎏ 한망 기준 국산과 수입 양파를 각각 가공했을 때, 수입 양파의 최종 산출량이 국산보다 2㎏ 정도 더 나온다”며 “중국산 양파는 이제 연중 고정 사용처가 있는 하나의 시장을 형성했다”고 말했다.
산지에선 국내 양파 생산기반 붕괴를 막기 위해선 정부의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올해산 조생양파 출하 전에 지난해 비축물량에 대한 선제적 시장 격리를 공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배정섭 전남서남부채소농협 조합장은 “정부 비축물량의 처리 방향이 결정되지 않아 국산 시세가 더 억눌리는 경향이 있다”며 “외국산에도 밀리는 국산 양파 시세를 최소한으로라도 지지하려면 비축물량의 시장 방출은 위험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