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한국농정신문] [농정춘추] 농민 안전망이 돼야 할 농산물 가격정책
2026.01.12
운영자
조회수 : 979





[농정춘추] 농민 안전망이 돼야 할 농산물 가격정책



강순중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2026. 1. 11




지난해 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대내외 여건과 농업·농촌 주요 현안을 고려해 2026년에 주목할 ‘10대 농정 이슈’를 선정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제시한 ‘2026년 10대 농정 이슈’는 겉으로 보면 다양한 과제를 담고 있지만, 농민의 처지에서 보면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가격이 버텨주지 않는데 다른 정책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10대 이슈 가운데 농민이 가장 중요하게 인식한 과제는 ‘가격보장과 보험 강화를 통한 농가소득 안정’이었다. 농민들은 가격보장(7.62점), 필수농자재 지원(7.60점) 등 즉각적인 경영 안정 대책을 가장 중요한 이슈로 평가했지만, 스마트화나 재생에너지 확산 같은 미래지향적 과제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평가했다. 이는 단순한 선호 조사가 아니다. 기후위기와 생산비 급등, 가격 변동성 확대라는 현실 속에서 농민이 체감하는 가장 직접적인 위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결과다.

농협중앙회 미래전략연구소의 ‘2026년 주목해야 할 농업·농촌 10대 이슈’ 전망도 비슷하다. 연구소는 ‘3대 위협요소’로 기후위기와 농업재해 증가, 경영비 상승으로 인한 농가 불안, 농촌 고령화와 청년층 이탈 등을 지목하고, 여기에 갖가지 불확실성 요인(경제 침체, 원자재 수급불안, 통상 위험 등)이 더해져 있다고 봤다. 따라서 농가 경영 안정을 위한 다층적 지원과 산업 구조 전환이 동시에 필요한 시점이라고 내다봤다.

10대 이슈가 시사하는 건 농민에게 가격은 정책 항목 중 하나가 아니라, 모든 농정의 출발점이자 우선순위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날 농업소득 통계는 가격 정책이 형편없었다는 점을 방증하고 있다. 농업소득은 1994년 처음으로 1000만원을 넘긴 이후 등락을 반복하다가 2022년에는 다시 10년 전 수준으로 후퇴한 바 있다. 물가상승을 반영한 실질 농업소득은 지난 30년 동안 거의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반면 농가소득은 비농업 소득 증가로 꾸준히 상승해 왔다. 이는 농가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농업 외 소득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농민들은 그동안 농가 수입 감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 농산물 가격 하락과 생산비 상승을 꼽았다. 이는 농가의 경영능력 문제가 아니라, 가격 구조와 비용 구조, 그리고 기후·환경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구조적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농산물 가격정책은 더이상 ‘시장 기능 존중’이라는 원칙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지금껏 농민들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핵심 요구는 단순한 ‘가격 인상’이 아니라 농산물 공정가격의 제도화다. 농민이 말하는 공정가격이란, 시장에서 농산물이 비싸게 팔려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최소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생산비를 보전받고,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할 수 있으며, 재해가 발생해도 농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의 가격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농민에게 공정가격은 생존의 기준선이다.

최근 대통령이 공공부문에서 최저임금이 아닌 적정임금 지급을 강조한 바 있다. 노동의 가치에 걸맞은 보상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농업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농민의 생명과 노동이 담긴 농산물 역시 적정한 가격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농산물 가격은 이 기준선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기후위기로 생산량이 줄어들면 가격이 오를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수입 확대나 소비 위축, 유통 구조 문제로 인해 농민이 체감하는 가격 상승은 제한적이다. 반대로 생산이 늘거나 특정 시기에 출하가 집중되면 가격은 급락하고, 그 손실은 대부분 농가가 떠안는다. 가격 상승의 이익은 제한적으로 돌아오고, 가격 하락의 위험은 고스란히 농민 몫이 되는 구조다.

이런 구조 속에서 농민들은 “농산물 가격은 왜 항상 시장에만 맡겨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공공요금, 최저임금, 공공 임대료 등에는 모두 사회적 기준이 존재한다. 하지만 국민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산물에는 생산비조차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반복된다. 이는 농업을 언제든 희생할 수 있는 영역으로 취급해 온 결과이기도 하다. 2026년 농정은 농민이 체감하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 즉 농산물 가격 안정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농업의 지속성과 농정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