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는 윤석열정부에서 유임된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의 존재로 인해 여야 모두가 공세를 펴지 못한 ‘맹탕 국감’이었다. 지난 10월 14일 국감에서 송 장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웃으며 답변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 지난 1월 13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열린 육성자금 피해 청년농들의 집회는 참석자 70여명 전원이 각자의 피해사례를 이야기하는 성토대회가 됐다. 한 청년농민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상황을 호소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2025 농업결산-농정] ‘윤석열의 그림자’ 못 떨쳐낸 이재명 농정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2025. 12. 21
2025년은 대한민국이 정치적 격변을 겪은 해였다. 지난해 12월 3일 발생한 비상계엄 내란 사건의 결과로 올해 4월 4일 대통령이 파면됐고, 6월 3일 새 대통령이 취임해 국정을 수습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반년여, 농업정책 역시 이전 정권의 잔재와 새 정권의 의욕이 아직은 어지러이 혼재해 있는 모습이다.
# 농민 뒤통수 친 ‘송미령 유임’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 농민들이 특별히 주목을 받는 건 농민운동의 역사적 사건인 ‘남태령 대첩’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1일 남태령 고개에서 즉흥적으로 벌어진 농민-시민 1박2일 연대투쟁은 이후 윤석열 탄핵 투쟁 내내 시민, 특히 사회 약자들의 목소리를 뭉쳐 내는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농민들은 혹한의 겨울에 광화문 단식 투쟁으로 절박함을 표했고, 2차·3차 트랙터 상경으로 사회 변혁에 동력을 부여했다.
하지만 정권교체 이후 농민들의 가슴에 자리잡은 건 ‘배신감’이다. ‘노조 출신 고용노동부 장관’ 등 진취적 인사를 선보인 대통령실은 유독 농림축산식품부에만 이전 정부 장관인 송미령 장관을 유임했다. 송 장관은 특히 윤석열정부 장관 중에서도 정책 이해당사자(농민) 및 더불어민주당과 가장 강렬하게 대립각을 세워 온 인물이다.
송 장관 유임 효과는 이내 정책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이 야당 시절부터 농민들과 함께 추진했던 양곡법·농안법·재해법 등 농업 민생 법안들은 그 핵심조항을 축소하고 농식품부에 재량권을 대폭 부여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됐다. 장관-민주당 간 정책 절충의 결과물이다. 윤석열농정의 마지막 활개였던 ‘벼 재배면적 8만ha 감축’ 역시 농정의 핵심 이념으로 잔존하게 됐는데 그 결과 쌀 부족, 전략작물 포화라는 예견된 문제가 발현되기 시작하면서 내년 이후의 상황에 우려가 드리우고 있다.
‘남태령 투쟁’의 주축 농민단체들이 계속해서 피맺힌 성토를 이어 가고 있지만 이재명-송미령 농정체제는 장기화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정부 농정파트 곳곳에 농민 또는 친농민 성향 인사들이 속속 포진하고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장관의 존재는 그 모든 의미와 기능을 퇴색시키고 있다.
# 농촌의 미래, 청년농을 어찌할까
2025년 새해 벽두부터 농업계를 뒤흔들었던 사건이 있으니 ‘청년창업농·후계농 육성자금’ 사태였다. 윤석열정부는 농촌의 미래를 위해 ‘청년농 3만명 육성’ 목표를 내걸었지만 이를 위한 육성자금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다. 예산이 없는 이상 정책 목표를 수정해야 했지만, 농식품부는 육성자금 선발 인원을 줄이는 대신 ‘일단 선발해 놓고 자금 지원 대상을 2차 선별하는’ 비정상적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3만명 육성’이란 껍데기를 유지하기 위해 사업의 내실을 파먹는 꼼수였다.
이 꼼수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양성했다. 육성자금 사업의 특성상 청년농들은 사전에 영농계획과 일부 토지·시설계약을 진행해야 했는데, 막상 정책자금을 받을 때가 되니 정부가 고개를 돌려버린 것이다. 정책의 유도에 따라 농업에 재산과 인생을 걸었던 수천명의 청년농이 정부로부터 사기를 당한 꼴이었다.
피해 청년농들의 절규와 정치권의 질타가 몇 달이나 이어진 끝에 결국 피해는 상당부분 구제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구제는 농식품부의 실책 인정과 사과가 아닌 ‘특별한 시혜’의 성격으로 이뤄졌다. 때문에 책임자 처벌은 전무하며 앞으로의 육성자금 사업엔 문제의 ‘선별지원’ 꼼수가 공식화돼버렸다. 이는 앞으로도 농정 전반에 비슷한 꼼수 시도가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정부의 청년농 육성정책은 윤석열정부의 ‘3만명 육성’ 구호 이전으로 완전히 회귀한 꼴이 됐다.
덧붙여 지금은 2018·2019년 사업 대상이었던 1·2기 선발자들의 첫 대출 상환이 도래한 시점인데, 이 1·2기 선발자는 특히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환조건(7~10년 분할상환)을 유지하고 있다. 불안정한 초기 농업소득으로 연 3000만~4000만원의 대출상환을 해야 하는 조건이다.
3기 이후의 현실화된 상환조건(20년 분할상환)을 적용받지 못하면 파산해야 할 처지가 여럿이지만 이 문제는 아직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차보전 사업이라 필요 예산이 겨우 1억4000만원에 불과함에도 정책적 의지가 확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불거진 선별지원 사태와 더불어, 농식품부의 청년농 정책은 청년농에 대한 배려와 감수성 부족을 계속해서 노출하고 있다.
# 농어촌기본소득, 불안한 출발
이재명정부 고유의 농업·농촌 정책 중 가장 의욕적이고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건 단연 농어촌기본소득이다. 내년부터 전국 10개 군에서 군민 1인당 월 15만원의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는 2년짜리 시범사업이 시작된다. 농촌고령화와 지역양극화 완화를 위한 중요한 실험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시작이 매끄럽지는 않다. 시범사업 결정 직전까지 사업 주체를 놓고 농식품부냐 행정안전부냐 논쟁이 있었는데, 결국 농식품부로 배정된 탓인지 정부의 책임성이 기대보다 약해져 버렸다. 소요예산 중 국비 비중은 겨우 40%뿐. 나머지 60%는 도와 군이 부담하게 됐다.
더욱이 ‘도비 30%’라는 정부의 지침이 있음에도 경기도를 제외한 모든 도가 이를 거부, 군 단위에서 평균 42%의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액수로 치면 군마다 수백억원에 해당하는데, 애당초 인구가 부족하고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군을 대상으로 한 사업인 만큼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에 몇몇 군에선 농민수당 등 기존 복지사업 예산을 축소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났다.
최근 2026년도 정부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국회가 사업예산 대폭 인상을 추진했지만 불발됐고, 기존 7개였던 시범사업 대상 지역을 10개로 늘리는 데에만 그쳤다. 다만 도비 30% 출연에 좀더 구속력을 가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사업이 매끄럽게 안착할 수 있을지 우려와 기대가 함께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