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 육묘장에 가득 쌓인 콩을 바라보며 농가들이 답답한 마음을 최동선 임실농협 조합장(왼쪽)에게 토로하고 있다. 예산 부족으로 수매대금 지급 지연은 물론 비축물량 수매 일정까지 지체되면서 콩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 두달 가까이 정부 비축물량으로 출고되지 못하고 농협 육묘장에 콩이 보관되면서 포대에 써놨던 농가 정보가 다 바래 사라졌다. 콩 수분함량 감소로 인한 손해는 보상받을 수도 없어 기약없이 늦어지는 수매를 기다리는 농가들의 걱정이 크다.
농안기금 고갈로 한달넘게 대금 지급 못해
농가, 자금 융통 어려워 각종 비용부담 늘어
수매일정도 지체…이대로 설 명절 맞을까 걱정
“정부 정책 따랐다가 빚만 생겨” 배신감 토로
농민신문 김제·임실=윤슬기 기자 2026. 1. 28
“정부가 벼 대신 콩 심으라더니 이제와 전량 수매는 커녕 대금 지급도 안해주니 막막할 따름입니다.”
지난해 12월 하순부터 정부의 콩 비축물량에 대한 대금 지급이 지연되면서 농가들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지난 연말까지 갚았어야 할 각종 영농비용이 여지껏 채무로 남아 연체이자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 신용등급 하락까지 걱정하는 상황에 놓여서다.
전북 김제시 죽산면에서 50㏊ 규모로 논콩농사를 짓는 정대일씨(43)는 “두차례에 걸쳐 120t을 정부 비축물량으로 출고했는데 12월말에 출고했던 2차분은 정산내역조차 받지 못했다”면서 “1차 출고물량에 대한 정산액으로 논 임차료같은 급한 불은 껐는데 아직도 농자재값은 갚지 못해 연체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정씨가 받지 못한 정산금액은 대략 2억5000만원 수준이다.
김제농협에 따르면 정씨처럼 정부 비축물량으로 콩을 출고하고도 대금을 받지 못한 농가는 200여명에 달한다. 김제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동일한 상황이라 피해규모는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조영제 국산콩생산자연합회장은 “지난해 12월20일 이후로 콩농가들이 돈을 받지 못해 끙끙 앓고 있다”면서 “벌써 3년째 수매대금 지급 지연사태가 반복되지만 40일 넘게 장기간 지연된 건 처음이라 농가들의 불안이 극에 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 비축물량으로 출고되면 2~3일 뒤면 대금이 정산된다.
역대급 수매대금 미지급 대란이 발생한 것은 결국 예산 부족 때문이다. 논콩 정부 수매대금은 농산물가격안정기금(농안기금)에서 집행되는 터라 농안기금이 바닥나면 수매대금 지급에 차질이 빚어진다. 2023년 12월부터 콩 수매대금 지급 지연사태가 매년 반복된 것도 고질적인 기금 고갈 문제 탓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해 추가경정예산으로 확보한 콩 수매대금 1000억원과 올 1월분 농안기금까지 써서 지난해 12월에 매입한 콩 대금 대부분을 지급했다”면서 “이후 매입물량에 대한 대금은 다음달에 배정받을 농안기금을 통해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2월10일은 넘어야 예산을 마련할 수 있을 전망이다.
아직 정부비축에 참여조차 하지 못한 지역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전북 임실이 대표적이다. 임실의 한 농협은 2025년산 콩 405t을 배정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지역 콩 생산량이 크게 늘어 697t을 기록했다. 지역 농가가 생산한 콩을 모두 받아준 이 농협은 물량 추가 배정을 기다렸다. 그러던 차에 수매대금 고갈로 12월24일부터 정부비축 매입 등록조차 중지돼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 농협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연말까지 기다리면서 타지역 잔여물량을 추가 배정받아 콩을 전량 수매해왔다”며 “올해처럼 정부비축 매입 등록조차 되지 않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난감해했다.
이를 두고 농가들은 애초에 현실을 무시한 배정량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마을 이장인 장인균씨(54·임실읍)는 “콩 생산량 증가는 모두가 예상한 일인데 정부 수매량을 2024년산 콩 생산량에 맞춰 책정해놓고 타지역 잔여물량 받을 때까지 기다리게 만드는 게 말이 되냐”면서 “지난해초 정부가 지역마다 벼 재배면적 감축 면적을 할당하다시피 해 결국 이장들이 먼저 나서 콩 재배를 늘렸는데 배신당한 기분”이라고 한탄했다.
임실지역 660여농가는 장씨처럼 답답한 심정으로 언제가 될지 모를 정부수매 일정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설 명절까지도 아무런 소득없이 빚만 짊어진 채 설 명절을 보내게 될까 걱정하며 분통을 터트릴 뿐이다.
손현두씨(63·임실읍)는 “정부 정책만 믿고 작년에 기존 벼 재배면적 16.5㏊ 중 13㏊가량을 콩으로 전환했는데 농사를 짓고도 여태 수익이 없어 8000만원이 넘는 채무만 남아 신용등급이 하락할 위기에 처했다”며 “2월 넘어서 정부 수매에 참여한들 그때까지 나간 연체이자와 수매만 기다리면서 날린 각종 불필요한 비용은 누가 책임지는 것이냐”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