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산물 직거래, 유통비용 절감보다 연결과 가치가 중요
이춘수 국립순천대 교수 2025. 12. 7
1990년대 초반 김영삼정부에서 직거래가 주류 유통의 대안으로 제시된 이후, 직거래는 유통비용을 줄여 수취가격을 높이고, 가격 변동성을 줄이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올해 9월 발표된 정부의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방안’에도 어김없이 유통단계를 축소한 대안 소비 경로 명목으로 직거래 정책이 제시됐다. 그러나 대안 제시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수취가격은 낮고, 가격 변동성은 높다. 정책 목표 달성의 관점에서 보면 직거래 정책은 실패했다. 그렇다면 농산물 직거래의 효용이 다한 것일까?
필자는 얼마 전 제1회 대산농촌포럼에서 ‘농으로부터 : 농과 식,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다’는 주제의 세션에 참여했다. 온라인 직거래 플랫폼인 ‘제주로부터’ 진정은 대표가 발표했고, 필자는 토론을 맡았다. 발표에서 진 대표는 ‘연결은 단순히 선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라는 마음의 움직임이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같은 계절의 밥을 나누며, 그 속에 관계가 자라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농업은 생산의 현장이 아니라 사람을 잇고, 지역을 회복시키는 관계의 예술’로 이러한 농업에서 유통 플랫폼의 역할은 ‘보이지 않던 가치를 드러나게 하고, 흩어진 마음을 다시 모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발표에서 느낀 점은 직거래 정책은 실패했으나, ‘보이지 않던 마을, 농부, 농촌 문화를 발견하고, 이를 매개로 농부와 소비자의 관계 맺기를 통해 흩어진 마음을 모으는 수단’으로서의 농산물 직거래는 유효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통비용 절감과 가격 변동성 완화라는, 직거래와 맞지 않는 정책 목표가 직거래의 효용을 훼손하는 것은 아닐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직거래 정책은 유통비용 절감이 아니라, 농촌 문화가 숨 쉬는 마을에서 살아가는 농민과 소비자의 연결을 통해 농업과 농산물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연결과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연결과 가치를 지향하는 직거래 정책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돼야 하는가? 현재는 ‘값싸지만 질 좋은 농산물’과 디지털 전환을 통한 ‘편리한 구매와 유통 효율성’을 직거래의 시작으로 본다. 시장 지향적인 직거래를 하자는 말이다. 그러나 진 대표는 “제주로부터는 단순히 농산물을 판매하는 플랫폼이 아니다. 농부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그들의 삶의 터전인 농촌을 이야기로 전하는 관계의 장이다”라고 얘기했다. 유통망 속에서 이름 없는 생산자가 아닌 멋있고 스타성 있는 농민의 삶의 이야기가 직거래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직거래가 대안이 되려면 주류 유통의 관점이 아니라 직거래만이 전달할 수 있는 가치에서 시작돼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연결과 가치를 지향하는 직거래 유통 플랫폼이 갖춰야 할 역량은 무엇일까? 직거래 플랫폼이 판매처로서만 기능한다면, 우수하고 차별성 있는 상품과 이를 공급하는 대단한 업적을 갖춘 생산자를 발굴하며, 상품화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직거래가 마을, 농민, 농촌 문화에 관한 이야기와 가치를 전달하는 연결자로 기능한다면, 마을과 농민의 이야기를 꾸준히 재발견하고, 이를 소비자와 연결하며, 소비자와의 연결을 통해 농민도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드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직거래 플랫폼의 차별화가 가능할 것이다.
근래의 유통정책에서 디지털 전환(DX)이 강조되면서 첨단기술을 유통에 활용하자는 주장이 있지만, 그 기술이 왜 필요하고, 무엇을 위한 기술인지에 대한 논의는 미흡하다. 이에 대해 진 대표는 “기술이란 몸이 고될 때 마음을 지켜주는 도구, 그리고 동료다. 기술을 적절히 활용해 내 시간을 저장하고, 내 일을 정리하며, 나의 마음을 되돌아볼 수 있다면 그건 분명 농업의 또 다른 지혜다”라고 얘기했다. 거창한 첨단기술보다 혼자 일하는 농민이 생각과 기록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적정기술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첨단기술의 도입 자체가 목적이 돼가는데, 그 필요와 쓰임새가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직거래 정책이 실패한 정책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도록 정책의 지향점과 방법, 그리고 관련 기술의 역할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