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의 농협 부패 관련 발언은 단순히 선출직 중앙회장이나 조합장의 일탈을 지적한 것이 아니다. 이는 그들을 선출한 농업계 전체가 연루된 중대한 사안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 만평 이미지는 칼럼 내용을 기반으로 인공지능이 생성한 것입니다.)
법 강화만으론 ‘돈 선거’ 못 막아… 조합원 의식 개혁과 선거인단 확대가
팜인사이트 김재민 기자 2025. 12. 15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농협 개혁 방안을 발표하며 고삐를 죄고 나섰다.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서 과거 60~70년대의 상징인 ‘고무신·막걸리 선거’를 언급하며, 후보 매수 등 입에 담기 부끄러울 정도로 후진적인 금품·향응 제공 문화를 강하게 질타했다.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방향성은 옳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단순히 제도와 처벌 강화만으로 이 뿌리 깊은 부패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부호가 남는다.
제도 만능주의의 함정, 역사가 증명했다 우리는 이미 수차례 경험했다. 법과 제도의 강화가 범죄의 소멸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선거법이 강화될수록 금권선거의 수법은 더욱 은밀하게 진화했다. 청탁금지법(김영란법) 도입 초기에는 사회적 경각심이 일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법망을 피하는 꼼수가 횡행했고 이제는 이를 의식하는 사람들조차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 됐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강력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줄기는커녕 더욱 교묘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특히 농촌 사회는 도시와 다르다. 인구수는 적고 혈연·지연으로 끈끈하게 엮인 ‘아는 사람’끼리의 사회다. 도시 정치판에서는 자취를 감춘 금품 살포가 농촌에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다. 문제는 이렇게 ‘돈을 써서’ 당선된 조합장은 임기 내내 본전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고, 이는 결국 조합의 부실과 비리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방아쇠가 된다. 이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 제도만 고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를 바 없다.
결국 해법은 ‘사람’과 ‘문화’에 있다 정부의 개혁안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근본적인 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첫째, 유권자인 농민 조합원의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대한민국 정치 선거가 과거에 비해 깨끗해진 결정적 이유는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돈 주는 후보는 찍지 않는다’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선관위와 농식품부는 단순한 감시를 넘어, 조합원 스스로가 감시자가 되도록 하는 강력한 의식 개혁 캠페인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둘째, 유능한 인재를 키우는 시스템과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현재 농축협 선거판은 ‘돈 없으면 못 나가는 아수라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경영 능력이 탁월한 ‘진짜 일꾼’들은 출마를 꺼린다. 개혁 의지를 갖고 도전했다가 금권선거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거나, 혹은 현실과 타협해 양심을 저버리는 안타까운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경영을 잘하는 유능한 조합장과 이사, 감사는 계속 일할 수 있게 하고, 비리 연루자는 영구히 퇴출하는 확실한 신상필벌과 성과 중심의 조직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중앙회장 선거, ‘전국 대의원 선거인단’이 현실적 대안 지역 농축협뿐만 아니라 ‘농민 대통령’이라 불리는 농협중앙회장 선거 방식도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현행 전체 조합장 투표제(또는 과거 대의원 간선제)는 유권자 수가 너무 적어 매수와 담합, 특정 파벌 형성이 용이하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일각에서는 전체 농민 직선제를 주장하지만, 이는 천문학적인 선거 비용과 과열 경쟁, 중앙회장의 정치인화를 유발할 우려가 크다.
이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대안으로 ''각 농축협 대의원을 통한 선거인단 구성''을 제안한다. 전국 1,200여 개 조합에는 각각 50~200명 내외의 대의원이 있다. 이들 모두를 선거인단으로 구성하면 투표 인원은 최소 6만 명을 넘어서게 된다. 웬만한 지방 군수 선거보다 규모가 커지는 셈이다. 6만 명을 대상으로 돈봉투를 돌리는 것은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조합장들끼리의 ‘형님·아우’ 하는 친소관계로 회장이 선출되는 폐단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최근 마무리된 농협축산경제 대표 선출 과정 역시 적은 투표인단으로 인해 전체 조합장들의 민의를 담기 어렵고, 과열 양상으로 치달았다. 경영능력이 있는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당초의 취지는 퇴색되고, 중앙회장 선거에 버금가는 혼탁한 선거전으로 변질되어 금권 선거가 개입하기 좋은 구조를 드러냈다.
낡은 관행 깨부수는 인식의 대전환 필요해 농협 개혁의 핵심은 ‘돈이 통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없는 제도적 보완이 있었고, 심지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를 주관하도록 하는 극약처방까지 나왔지만 별반 달라진 게 없다. 기계적으로 조합장의 연임을 제한하겠다는 정부의 방안은 자칫 일 잘하는 조합장까지 제거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권한이 더 막강한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에게도 적용하지 않는 기계적 규제를 들이대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자격 요건 강화, 경영평가에 따른 페널티와 같은 제도적 보완책 위에, 조합원들의 깨어있는 의식과 압도적인 선거인단 규모라는 토대가 마련될 때 비로소 ‘돈 선거’라는 부패의 출발점이 자취를 감출 것이다. 지금은 제도를 핑계 댈 때가 아니라, 낡은 관행의 틀을 깨부수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번 업무보고 때 농축협이 비리의 복마전처럼 언급된 것은 단순히 경영진 몇몇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그 경영진을 누가 선임했는가? 바로 농업계가 투표로 선출했고, 그렇게 당선된 사람들이 조직을 통제하고 있다. 이는 소수의 부패 문제가 아니라 농업계 전체가 연루됐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인정하고, 자정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