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 주요 유통채널별 정산주기 비교. &#8206Made with Gemini
직거래 환상에 빠져 대형 유통업체 60일 외상 갑질을 혁신이라 포장
한우 70% 도매시장 출하...청과도 절반은 여전히 도매시장 이용
팜인사이트 김재민 기자 2025. 12. 4
''유통 단계를 줄여야 산다'', ''직거래가 답이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소리다. 마치 농축산물도매시장이나 공판장은 농민의 등을 치는 중간 상인들의 소굴이고, 직거래는 선(善)인 양 매도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현실은 딴판이다. 그렇게 좋다는 직거래를 두고, 왜 한우 농가들은 10여 년 전 50% 수준이던 도매시장 출하 비중을 지난해 70%대까지 늘렸을까? 왜 여전히 청과물 유통의 절반이 도매시장을 거쳐 갈까? 농민들이 셈을 못해서가 아니다. 진짜 이유는 ''돈이 도는 속도''에 있다.
위 그래픽은 유통의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농민이 피땀 흘려 키운 농산물을 넘겼을 때, 도매시장은 이튿날이면 통장에 현금을 꽂아준다. 반면, ''상생''을 외치는 대형마트와 거대 이커머스 업체들은 짧게는 20일, 길게는 두 달(60일) 뒤에야 대금을 정산한다.
이 엄청난 시차(時差)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출하자들이 대형 유통공룡들에게 최대 두 달간 무이자로 막대한 자금을 빌려주고 있다는 뜻이다. 농가와 직거래 조직들은 그 기간 동안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금융비용''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었다.
반대로 유통업체들은 출하자들이 강제로 제공한 이 풍부한 유동성(외상값)을 레버리지 삼아 덩치를 키우고 딴주머니를 찬다. 납품 대금을 제때 주지 않고 여기저기 투자금으로 유용하다가 티몬·위메프 사태처럼 ''먹고 죽는'' 기업이 나오거나, 과도한 빚으로 부실의 늪에 빠진 홈플러스 같은 사례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들의 방만한 경영 리스크를 왜 힘없는 출하자들이 ''외상 대금''으로 감당해야 하나.
유통에 선악은 없다. 효율과 비효율이 있을 뿐이다. 일년간 지은 농사 지은 농민들에게는 비용 적게 들이고, 내 물건 제값 쳐주며, 무엇보다 오늘 판 돈 내일 바로 입금해 주는 곳이 ''장땡''이다.
도매시장이 여전히 건재한 이유는 낡은 관행 때문이 아니다. ''익일 정산''이라는 가장 강력하고 정직한 무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직거래 환상''에 빠져 대형 유통업체의 'ླྀ일 외상 갑질''을 혁신이라 포장하는 동안, 농민들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돈맥경화 걸린 직거래보다, 피가 도는 도매시장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