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까지 거리 농촌이 4배 멀어
먹거리기본권 보장 입법 움직임
단순 배달 넘어 자생조직 육성해
유통·돌봄·복지 결합모델 필요
농민신문 김소진 기자 2026. 2. 5
농촌에서 식료품을 얻기 위해 이동해야 하는 거리는 도시보다 평균 3.7배 길다. 이런 물리적 여건이 농촌의 고령화와 교통 불편으로 얽히면서 지역간 영양 불평등이 심화하는 모양새다. 이에 정부는 ‘이동장터’ 운영을 확대하고 국회에선 식품사막 해소를 위한 입법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하지만 예산 부족과 외부 인력 의존 탓에 지속가능성에는 의문이 뒤따른다. 전문가들은 주민이 운영 주체로 참여하는 자생적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식품 격차’가 부른 영양 불평등=더불어민주당 복기왕(충남 아산갑), 임호선(충북 증평·진천·음성) 의원이 최근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이들 개정안은 식품 접근성을 법적으로 정의하고, 이동판매와 공공배송 등 공급 대책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공공 책무로 명시해 농촌 주민의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안이 나온 배경엔 심각한 농촌의 식품사막 현상이 있다. 한국농촌사회학회에 따르면 농촌의 식료품 서비스 이용을 위한 평균 이동 거리는 3605m로 도시(971.3m)보다 3.7배 멀다. 경기연구원 역시 최근 보고서를 통해 농촌형 지역의 마트 접근 거리(10.2㎞)가 도시형(4.1㎞)보다 두배 이상 멀며, 교통 수준을 고려할 때 농촌지역의 99%가 이미 사막화단계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격차는 이동이 불편한 고령층 사이에서 더 컸다. 202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실태조사 결과, 생필품을 구매하는 데 도보로 1시간 이상 소요되는 고령층의 비중은 읍·면 지역이 20.4%에 달해 도시(0.6%)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열악한 접근성은 실질적인 영양 위기로 직결됐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전국 영양섭취부족자 비율은 2020년 대비 2024년 동 지역이 17.2%에서 16.1%로 개선됐지만, 읍·면 지역은 18.9%에서 20.1%로 상승하며 도농간 건강 격차를 키웠다.
◆이동장터, ‘주민 주도’로 전환해야=정부가 농촌 식품사막화 완화를 위해 ‘찾아가는 이동장터’를 지난해 9곳까지 확대했으나, 현장에선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동장터가 시범·단년도 예산에 묶여 전국 확산 기반이 약하고, 지자체나 농협 등 외부 주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안정적 운영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구준회 전북 순창군 풍산면 주민자치위원장은 “수익성이 낮은 이동장터 사업 특성상 이를 운영하는 민간단체가 버티기 위해서는 인건비와 차량 유지비 등의 지원이 절실하다”며 “고향사랑기부금 지정기부제를 활용해 주민 주도의 이동장터 운영을 제안했지만, 가로막힌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해법으로 주민 주도의 내발적 조직 육성을 제시한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주민들이 단순 물품 공급을 넘어 돌봄과 복지를 결합한 모델을 설계해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동장터’의 원조 모델로 꼽히는 전남 영광군 묘량면의 ‘동락점빵’을 운영하는 여민동락공동체는 작은학교 살리기와 노인복지센터 운영을 기반으로, 노인의료복지주택 설립과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전환까지 추진하며 주민이 직접 지역서비스를 만들어가는 구조를 현실화하고 있다.
이순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농업전망 2026’에서 “농촌 사회 서비스 공급을 외부 의존에서 주민 주도로 전환해야 한다”며 “주민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생산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초기에는 학습 등을 지원하고 성장기에는 프로젝트 실행을 돕고 성숙기에는 법인 설립까지 도우며 단계별 맞춤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전북도의 농어촌 일자리·일거리 은행 구축 사업처럼 도시 청년이 농촌으로 유입돼 인력난을 보완하는 구조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단순 배달 넘어 ‘생활권 복합망’으로=중장기적으론 정밀한 정책 지표와 다각적 유통 체계를 결합한 ‘생활권 복합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미국 볼티모어시는 거리(400m 이상), 차량 미보유율(30% 이상) 등을 수치화한 ‘건강한 음식 우선 지역(Healthy Food Priity Areas) 지표’를 마련해 정책 대상을 정교하게 선별한다. 상점 유무를 넘어 경제력과 이동 수단이 부족해 신선식품을 구매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데이터로 골라내는 방식이다.
정책 실행은 ‘볼티모어 식품정책 이니셔티브’가 전담한다. 이 기구는 소형 점포를 신선식품 공급 거점으로 전환하는 ‘건강한 상점(Healthy Stes)’ 프로그램, 소량 주문의 가격 부담을 줄이는 ‘신선 상자(FreshCrate)’ 유통 모델을 운영한다. 이에 더해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을 위해 도서관·노인주택에서 온라인 주문과 배달을 연계한 제도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