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림축산식품부가 10월 20일 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 공모에 참여한 49개 군 중 7곳을 대상지로 최종 선정해 발표했다. 탈락한 지자체를 중심으로 공모 후폭풍이 지속됐고 국회 예산안 과정에서 3곳이 추가됐다. 내년 시행을 앞두고 광역·기초자치단체 간 재원 분담 문제로 갈등이 진정되지 않고 있다.
* 정부가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 공모 계획을 발표한 이후인 9월 22일 충북 영동에서 열린 전국농어촌지역군수협의회와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 간담회 모습.
<2> 어떻게 설계해야 되나-추진 논란과 주요 쟁점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2025. 12. 9
농어촌기본소득은 정부가 지난 9월 시범사업 공모 계획을 발표한 이후 전광석화처럼 추진 궤도에 올랐다. 예산안 편성과 시범사업 설계 등 핵심 논의가 정부 주도로 빠르게 진행되면서 속도감은 기대를 웃돌았지만, 공론화 과정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탈락한 지자체의 반발, 광역·기초자치단체 간 갈등 등 공모에 따른 부작용이 드러났고, 시범사업 설계 논의에 참여하지 못한 농업계도 주요 쟁점을 두고 제각기 의견을 내놓고 있다. 현장에서 제기되는 시범사업 과정과 내용상의 주요 쟁점을 짚었다.
정부 주도 빠르게 추진했지만
시범사업지 선정부터 갈등
정교한 정책효과 측정 우선
제도 보완·공론화 선행돼야
▲‘농어촌 퍼주기’, 되풀이되는 논쟁과 공방=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월 11일 대선후보 시절 페이스북을 통해 농업 관련 공약을 발표하며 “농어촌주민수당 지급”을 처음 공식화했다. 당선 이후 정부가 2026년 시범사업 추진 계획을 신속히 내놓고, 10월 시범 지역을 선정하면서 정책 추진에 속도가 붙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규모 세금 투입’, ‘퍼주기 포퓰리즘’ 등 해묵은 논쟁도 되풀이됐다. 이런 인식은 11월 7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내년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소득과 관계없이 다 지급한다면 같은 공무원이라도 시골에 살면 받고, 도시에 있으면 못 받는 것 아닌가. 이 예산을 R&D에 투입하면 농어촌이 더 잘 살 수 있는데 퍼주기식 포퓰리즘으로 가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이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다들 도시로 가고 싶어하지 시골에 오려 하지 않는다. 소멸 위험 지역은 소비 여력이 없어 미장원도 없고, 생필품 구입처조차 사라지고 있다. 지역 소비 여력을 키워 악순환을 끊고 활력을 만드는 마중물 역할을 해보자는 정책”이라고 강변했다.
이처럼 ‘세금 퍼주기’라는 인식의 바탕에는 농어촌에 이미 많은 예산이 투입됐고 그 혜택이 충분히 돌아갔다는 전제가 깔려있으나 실제 농어촌 현장 인식과 큰 차이가 있다. 시범사업의 정책 실효성을 뒷받침해야 하는 주요 이유다.
여기에 경남 등 여러 시범 지역에서 광역·기초자치단체 간 재원 분담 갈등이 겹치며 시범사업 시행 직전까지 혼란이 진정되지 않는 상황도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정지영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사회적협동조합 소장은 “지금 논쟁은 정책의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며 “농어촌기본소득의 핵심은 ‘얼마를 주느냐’가 아니라 ‘그 돈이 지역에서 어떻게 순환되느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필요한 것은 재원 부담 논쟁이 아니라 정책 효과를 정교하게 측정하려는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대상 지역 읍면 단위로 전환
재원 확보 방안 핵심 쟁점
‘주민수당’으로 추진 의견도
주무부처 둘러싼 공방 계속
농업계 ‘행안부가 담당’ 우세
▲시범사업 설계에서 제기되는 쟁점은=전문가들은 정책 효과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본사업 전환 논의로 이어질 경우 논란이 커지고, 본사업 추진은 물론 정책 지속성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따라서 안정적인 본사업 전환을 위해서는 충분한 공론화와 제도 보완이 반영돼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정부가 설계한 시범사업 내용과 첨예하게 입장이 갈리는 쟁점 중 하나가 대상 지역의 범위다. 시범사업은 ‘지방분권균형발전법’에 따라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89개 시군구 중 5개 구와 15개 시를 제외한 69개 군에서 최종적으로 10개 군이 선정돼 총 32만4000명 주민을 대상으로 추진된다.
하지만 인구소멸 위험이 더 심각한 읍면 단위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상주시, 익산시 등 15개 도농복합시의 읍면은 소멸 위험에 직면하고 있는데도 공모 단계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돼 형평성 논란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구 3000명 이하 면 단위’ 지급을 우선 도입하고 점진적인 확대 방식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반면 읍면 단위로 세분화할 경우 농어촌 지역 내 반발을 키울 수 있어 시군 단위가 적합하다는 반론도 있다.
재원 확보 방안도 핵심 쟁점이다. 대상 지역 확대 여부에 따라 비용 추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어 법제화 및 본사업 전환 단계에서 가장 큰 논란이 예상된다.
박진도 국민총행복전환포럼 이사장은 “월 30만원을 인구 3000명 이하 지역의 약 139만명에게 지급한다면 연간 약 5조원이 필요하다. 이는 국정기획위원회가 월 15만원을 69개군 272만명에게 지급하겠다는 본사업 예산(4조9000억원)과 유사한 규모”라며, 지방소멸대응기금(1조원), 지역상생발전기금(4400억원), 정부가 농어촌기본소득에 사용할 용의가 있는 4조9000억원의 40%인 2조원, 지출 구조조정 등을 통해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읍면 전체로 확대할 경우 재원 부담은 크게 증가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전체 읍면 인구(970만명) 대상으로 월 15만원·국비 50%를 적용할 경우 연평균 17조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추계한 바 있어 재정 논의는 더 복잡해질 전망이다.
명칭을 ‘농어촌기본소득’이 아닌 ‘농어촌주민수당’으로 바꿔 정책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정책 명칭(기본소득)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쟁을 줄이고, 단순 현금 지원이 아니라 국토와 지역을 지켜내는 공공적 기능에 대한 정당한 보상(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이라는 성격을 명확히 하자는 취지다.
지급 금액 수준의 적정성 문제도 제기된다. 월 15만원은 경기 연천 청산면 사례와 동일하지만, 지역경제 활성화와 정주 인구 유지 효과를 위해선 30만원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기초생활 생계급여 중 인구 비중이 가장 많은 4인 가구 기준으로 생계급여(35만원)와 기초연금(25만원) 급여를 감안하는 한편 재정 실현 가능성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지급 방식 개선 요구도 나온다. 시범사업은 전액 지역 상품권 지급이지만, 고령층 접근성이나 업종 제한 등을 고려하면 현금과 지역 상품권을 혼용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의견이 있다.
주무부처를 누가 맡아야 할지 공방도 남아있다. 농업계는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일환으로 행정안전부가 맡아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한 가운데 국회에서 농어촌기본소득 관련 법률안 4건이 농해수위와 행안위 소속 의원들을 통해 각각 발의돼 있어 법제화 과정에서 공방이 예상된다.
이밖에도 지급액 일부의 지역공동체 기금화, 주민자치·사회적경제와의 연계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한 공론화 필요성이 제기된다.
다양한 지표 통합적으로 설계···장기적 관점에서 평가해야
▲ 정확한 평가·검증 체계가 성공 좌우=전문가들은 시범사업의 성패가 ‘정교한 검증 체계’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고용·정주·지역경제·사회서비스 등 다양한 지표를 통합적으로 설계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농어촌기본소득이 일자리·돌봄·교통·의료와 같은 필수 서비스 접근성 개선과 연결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강조된다.
김규호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내년 본격적인 실시를 앞두고 이제 정교한 정책 평가 설계에 골몰할 때”라며 “지역경제와 상권, 이동과 정주 양상, 사회관계망 등을 거시적이고 종합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군 단위 사업 방식의 장점은 살리면서도, 읍면 단위로 사업 운영 모델을 달리하거나 유형을 구분해 정책 효과를 실증할 수 있는 방법의 모색, 유사 군 단위 지역의 방법론적 매칭, 행정자료 연계 등에 필요한 개인정보와 데이터맵 등의 작성 등 실질적인 준비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수 농식품부 농촌정책과장은 “국책기관이 참여한 전담팀을 구성해 성과지표와 평가체계를 마련하고 있으며, 연내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시범사업 동안 나타나는 변화에 대해 다양한 지표를 바탕으로 한 평가가 진행될 것이고, 전담팀 내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기본소득특위 구성원들의 참여 여부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민관 추진체계의 역할론이 강조되면서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도 위원회 내 농어촌기본소득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대응에 나섰다.
기본소득특위는 농어촌기본소득 정책의 수용성과 실현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논의 플랫폼으로 운영되며, 기본소득의 개념과 취지를 국민에게 보다 쉽게 전달하고 다양한 현장 목소리를 수렴해 대국민 공감대 형성에 기여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한 시범사업 추진 과정에서 제도적 보완사항과 개선과제를 도출하고, 타 사업과의 연계 방안 등을 함께 검토해 지속가능한 운영 방향을 제시할 계획이다. 특위에는 학계·농업인·민간단체·정부 관계자 등 전문가와 자문위원이 참여해 지속가능성과 발전 방안 등 제도 전반을 둘러싼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차흥도 기본소득특위 위원장은 “농어촌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정책의 도입 과정에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확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소득특위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제도 설계, 운영 방식, 재원 구조 등 다양한 관점에서 균형있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