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단기 물가 잡기보다 생산기반 안정을
농민신문 이연경 전국사회부 강원 주재기자 2025. 11. 19
아무리 봐도 자연의 섭리를 거슬렀다. 대개 식물이라면 햇볕을 보면 파릇파릇해지고 해가 지면 풀이 죽어야 하거늘, 이 병에 감염된 배추는 낮엔 풀이 죽고 해가 지면 싱싱해졌다. 강원 태백·강릉 일대 농민들은 이런 걸 ‘좀비 배추’라 불렀다. ‘사탕무시스트선충’에 감염된 배추다.
사정을 모르는 이에게 배추밭의 풍경은 그저 평화로워 보이지만, 배추는 처절한 사투 중이다. 토양 속 배추 뿌리에 기생하는 시스트선충은 낮에 활동하며 시시각각 배추의 영양분을 빼앗는다.
고랭지 전역은 이미 위험권이다. 2011년 태백에서의 첫 감염에 이어 피해면적은 점점 늘고 지역도 확산 중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피해면적은 올 7월 기준 563.9㏊로 지난해 총방제면적 224.2㏊ 보다 두배 이상 넓다.
시스트선충은 방제가 어렵다. 크기가 미세해 육안으로 식별이 불가능하고, 한번 발병하면 그 알이 토양 속에서 수년간 생존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휴경만이 대안”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그 심각성을 관계기관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올해부터 공적 방제사업에서 ‘휴경’이 제외됐다. 농민들이 전한 이유는 뜻밖이었다. 2024년 폭염으로 배추값이 단기간 급등하자, 언론은 이를 ‘金(금)배추’ ‘金치’라 부르며 가격 논란을 키웠다. 그러자 정부는 배추 수급을 안정시키겠다는 명목으로 중국산 배추를 대거 수입하는 한편, 공적 방제 항목에서 휴경을 뺐다는 것이다.
휴경은 단순히 밭을 비워두는 일이 아니다. 선충을 줄이는 과학적 방법이자, 전세계적으로 검증된 방제 기술이다. 토양을 갈아엎고 일정 기간 기주 작물을 심지 않음으로써 병원충 밀도를 낮추는 방식이다. 그런데 정부는 단기적인 수급 대책에 매달리다 이 방식을 포기했다. 국가가 농업을 물가 지표로만 판단할 때, 정책의 시야는 좁아진다.
올해도 상황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강원 평창에서 처음 시스트선충이 발견됐고, 이달 들어 강릉에서 다시 시스트선충 의심 보고가 나왔다. 그뿐 아니다. 국내 최대 배추 산지인 전남 해남에서도 시스트선충 감염으로 의심되는 증상이 보인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고랭지와 충남 아산에 이어 전남까지, 사실상 전국이 이 해충의 위협 아래 놓였다는 경고다. 그러나 대응은 오히려 후퇴했다.
밥상 물가 관리는 중요하다. 하지만 일시적 물가 잡기보다는 농업 생산기반 안정을 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서민 삶 안정을 위해서도 더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