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국정과제 추진 급물살
기후부 주도로 로드맵 단축
섣부른 보 철거·하굿둑 개방
농업용수 공급 악영향 우려
농민신문 양석훈 기자 2025. 12. 7
‘4대강 재자연화’가 국정과제로 추진되는 가운데 물 정책 최대 이해당사자인 농업계는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시류에 휩쓸리는 모양새다. 농업용수 대안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채 4대강 보(洑) 철거나 하굿둑 개방이 이뤄지지 않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확정된 내년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에서 ‘양수장 시설개선’ 예산은 246억원이 반영됐다. 당초 농식품부는 185억원을 요구했는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1440억원까지 증액 얘기가 나왔다가 최종적으로는 61억원만 늘었다.
이 사업은 4대강 보 개방으로 농업용수 공급에 제약이 예상되는 양수장 시설을 개선하는 내용이다. 현재는 양수장 취수구가 높은 수위에 위치해 보 수문 개방으로 수위가 낮아지면 취·양수가 불가하다.
사업 대상은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양수장 101곳으로 이 중 11곳만 개선이 완료됐고 90곳은 설계가 중단된 상태다. 문재인정부의 4대강 보 철거·개방 기조를 윤석열정부가 뒤집으면서 해당 예산도 사라진 탓이다. 상황은 이번 정부 국정과제에 4대강 재자연화를 위한 보 개방 및 취·양수장 개선이 포함되면서 달라졌다.
농업계가 4대강 재자연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예산국회를 불안하게 지켜본 건 논의에서 농식품부가 끌려가는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2028년까지 소관 취·양수장 70곳의 개선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과 달리 농식품부는 2030년까지 양수장을 개선하겠다면서 내년 예산으로는 설계비 정도만을 요구했었다. 대다수 시설에 대한 전면 재설계(8개월여 소요)가 필요한 상황에서 내년에 실제 공사에 쓸 수 있는 돈은 많지 않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농식품부가 국정과제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농식품부는 기후부 로드맵에 맞춰 2028년까지 양수장 개선을 완료하고 공사비가 상당 부분 반영된 1440억원 수준의 예산도 수용하겠다고 예결위에 입장을 밝혔다.
이 장면을 두고 농업계에선 속도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임병희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상당수 양수장은 취수구 위치 조절이 아니라 이설해야 하는 상황인데 용수 공급이 원활한 대체 부지 확보가 단기간에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실제 농어촌공사에 따르면, 로드맵을 앞당기면서 사업 방향을 취수구 개선에서 양수장 완전 이전으로 선회한 상태다. 공사 관계자는 “기존 시설은 4∼9월 급수기에 공사가 불가해 대체 시설을 신규 조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면서 “로드맵 단축에 따라 근로자 안전, 부지 확보, 자재 수급과 부품 제작 기간 등에 일부 리스크가 생긴 것도 맞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로드맵이 변경된 상태에서 예산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자칫 양수장 개선이 이뤄지기 전에 기후부 구상에 따라 보 개방이 이뤄지면 농업용수 피해는 불가피하다. 서천호 국민의힘 의원(경남 사천·남해·하동)에 따르면, 문재인정부 시절 보 개방으로 농업용수 부족이 현실화했고 정부는 피해 농민들 137명에게 13억810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한 바 있다.
하굿둑 개방을 두고도 우려가 표출된다. 현재 4대강 재자연화의 일환으로 낙동강·금강·영산강 하굿둑 개방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는데 금강과 영산강의 경우 현재 상태에서 하굿둑을 개방하면 양·취수장에 해수가 유입돼 인근 농지에 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자체적으로 법안을 준비하는 기후부는 농업용수에 피해가 없게 하겠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농식품부도 기후부와 농업용수 영향에 대한 연구용역을 공동 진행하는 한편 입법 과정에서도 농업계 목소리를 적극 대변하겠다는 입장이다.
강정현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4대강 재자연화 자체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라면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정책에 반영하는 거버넌스가 작동해야 하는데, 농업 영향을 살피고 대안을 먼저 마련해달라는 요구를 국정과제 발목 잡기처럼 죄악시하는 상황이어서 불안감이 크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