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철원 사과서 보는 기후위기 속 새로운 가능성
202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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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철원 사과서 보는 기후위기 속 새로운 가능성



엄경일 한국농어촌공사 강원지역본부 철원지사 계장 2025. 12. 5



기후위기가 농업의 지도를 바꾸고 있다. 아니, 농업은 기후변화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며 가장 먼저 움직이고 있다. 한반도의 연평균기온은 100년 전보다 약 1.8℃ 높아졌고, 그 여파로 작물의 생육지도도 함께 변하고 있다. 고온과 이상기후의 반복은 기존의 농업지도를 무력화시켰고, 특히 과수작물은 기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전통적인 주산지의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다.

충주, 문경, 장수 등 전통적 사과 주산지마저 더 이상 안정적 재배지라 보기 어렵다. 반면 강원도 철원, 홍천, 인제 같은 중북부 지역은 사과의 새로운 터전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 변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최근 20년간 강원도의 사과재배면적은 11배 증가하였다. 특히 강원도의 최대 곡창지대인 철원군은 2000년 5ha에 불과하던 사과 재배면적이 2023년에는 88ha로 17배 넘게 늘었다. 이는 단순히 기후 변화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현상이다.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농업인의 전략, 그리고 그를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가 함께 작동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철원에서 ‘드림농원’을 운영하는 유민호 씨는 이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씨름선수 출신인 그는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두고 고향 철원으로 돌아와 사과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첫 과수원은 과수화상병으로 전면 폐원되는 아픔을 겪었다. 절망 속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농어촌공사의 ‘과원규모화사업’을 발판 삼아 인근 토지를 확보하고, 자동관수시스템을 도입했으며, 분산된 농지를 정비해 재기에 성공했다. 지금 그는 2000그루의 사과나무로 억대 매출을 내고 있고, 올해에 1500그루를 추가 식재하는 등 과원을 확장 중이다. 나아가 IoT, AI 기반의 노지 스마트팜 기술을 도입해 병해충 감지, 생육 분석, 수확 예측이 가능한 정밀농업으로 진화시키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단순한 농부가 아니라, 변화하는 농업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농업 경영인인 셈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제도적 뒷받침이다. ‘과원규모화사업’은 과수전업농육성대상자 등의 경영규모를 확대하고 과원을 집단화함으로써 경쟁력 및 개방적응력을 키우며, 젊고 유능한 인력을 농촌에 유치하여 규모화·전문화된 과원경영체를 육성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신규 과수 지역인 철원처럼 기반이 약한 지역에서 이 사업은 농가가 자생력을 갖추는데 매우 실질적인 기회가 된다.

기후 적응형 농업은 개별 농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후위기는 국내의 농업지도를 바꾸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구조적 전환으로 이해해야 한다. 농업의 전환은 개별 농가의 생존을 위한 대응방안 이자, 기후위기에 맞서는 중요한 사회적 전략이다. 농가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기댈 것이 아니라, 공공이 함께 길을 만들어 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단순히 재해보상이나 보조금 중심의 대응을 넘어서, 기후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품종 보급, 스마트 영농 인프라 확대 등 ‘적응과 재설계’에 초점을 맞춘 제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과원규모화사업처럼 농가의 자생적 회복력을 높이는 농지구조개선 사업이 중요하다.

철원의 사과밭은 농업의 미래는 더 이상 과거 방식의 연장이 아니며 기후에 대응하고, 기술을 접목하고, 구조를 바꾸는 일이어야 한다고 말해준다. 기후변화의 속도를 탓하기보다는, 그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정책과 현장이 늘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정책이 이 길에 실질적인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과감하고 유연한 접근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