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휴게소, 이제는 지역에서 운영하자
조원희 전 상주시로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2026. 1. 5
고속도로 휴게소는 하루 수만 명이 오가는 국가 기반시설이자 지역으로 들어오는 첫 관문이다. 그러나 국내 휴게소 풍경은 어디나 비슷하다. 프랜차이즈 식당, 전국 공통 메뉴, 지역과 무관한 기념품, 원산지를 알 수 없는 수입 먹거리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현재 고속도로 휴게소는 한국도로공사가 관리하고, 운영은 대기업이나 대형 유통 계열사가 맡는다. 그마저도 여러 단계의 운영자가 중간에서 수수료를 취하는 구조다. 운영의 기준은 철저히 이윤이다. 이용객들은 맛없고 비싼 식당이지만 그냥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들른다. 지역 농특산물 판매장은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있어 찾기도 어렵고 판매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지역 소상공인의 참여는 제한적이며, 일자리는 저임금·비정규직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차량과 사람은 지역에 있는 휴게소를 다녀가지만, 경제는 지역에 머물지 않는다.
일본은 ‘미치노에키’, 즉 ‘길의 역’이라는 휴게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고속도로와 국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단순한 휴게 공간이 아니다. 국토교통성이 제도를 설계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운영 주체가 되어 지역 활성화를 목적으로 만든 공공시설이다. 현재 일본 전역에는 1230곳이 넘는 미치노에키가 운영되고 있으며, 이곳의 핵심 기능은 세 가지다.
첫째, 안전한 휴식 공간, 둘째 지역 정보와 관광의 거점, 셋째 지역 농수산물과 특산물의 직거래 시장이다.
미치노에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지역 농민이 직접 생산하고 납품한 농산물 매대다. 제철 농산물과 가공품, 지역 특성을 살린 음식이 주력 상품이다. 체험과 관광·숙박 안내가 한 공간에서 이뤄진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는 거의 없다. 대신 ‘이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 이 지역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 중심이 된다. 소비자들은 지역을 맛보고 체험하며 가족들과 함께 먹을 음식을 사기 위해 미치노에키에 들린다.
미치노에키를 통해 농민에게는 안정적인 판로가 생겼고, 소규모 농가도 1차 농산물과 다양한 가공품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지역 주민에게는 일자리가 생겼고, 청년들이 농산물 가공·기획·관광 분야로 유입됐다. 미치노에키는 휴식을 넘어 관광과 체험·숙박으로 이어져 지역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운영의 목표가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지역 기여도’라는 점이다. 매출이 지역 농가소득으로 얼마나 연결되는지, 지역 고용을 얼마나 창출하는지가 운영 성과의 핵심 지표다. 이는 다단계 민간 위탁 구조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철학이다.
지역을 스쳐 지나가는 공간에서 지역을 살리는 거점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국토부와 도로공사 업무보고를 통해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의 개혁을 주문했다. 이참에 휴게소 운영권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고, 공공 지역 플랫폼으로 재설계하자. 지자체가 운영 주체가 되면 휴게소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지역 농민이 참여하는 로컬푸드 직매장, 지역의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식당, 관광·축제·농촌체험과 연계된 정보 허브, 지역 특성을 살린 청년 창업, 주민을 우선 고용하는 안정적 일자리 공간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일본의 미치노에키가 보여주듯, 길 위의 공간은 지역을 살리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제 고속도로 휴게소를 지역의 스토리와 정을 함께 느끼고 돌아가는 도농교류의 장, 지역 재생의 플랫폼으로 만들자. 사람과 돈, 이야기가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게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