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팜인사이트] [특집기획] 식탁 위 경제학
202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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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식탁 위 경제학


애덤 스미스의 사과부터 베블런의 한우까지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눈으로 본 농업의 세계



팜인사이트 김재민 기자 2025. 11. 10



1부 시장의 탄생, ‘보이지 않는 손’이 농산물을 옮기다



1.1 토머스 맬서스

200년 전의 경고, 기후위기 시대에 다시 울리다

※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년 2월 14일 ~ 1834년 12월 23일)


토머스 맬서스의 1798년 『인구론』은 인류 역사상 가장 도발적이자, 시대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간 예언자 중 하나였다. 맬서스가 살았던 시대, 즉 농업 기술이 발전하기 이전, 농기계와 같은 자본재가 투입되기 이전의 세계에서 그의 이론은 지옥처럼 암울했지만 완벽한 현실이었다. 인구가 늘면 식량을 생산할 땅이 더 필요했지만, 새로 경작하는 땅은 기존의 비옥한 땅보다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수확 체감의 법칙''''으로, 한정된 토지에 노동력을 더 투입해도 식량 생산량은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의 논리는 단순하고도 강력했다. 인구는 1, 2, 4, 8로 늘어나는 기하급수적 힘을 가졌지만, 식량 생산은 1, 2, 3, 4로 늘어나는 산술급수적 한계에 갇혀 있다는 것이었다. 피할 수 없는 결론은 기근, 빈곤, 전쟁을 통한 인구 조절이었고, 인류는 이 필연적인 ''''맬서스의 덫''''에 걸려 파국을 맞이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20세기는 맬서스를 ''''틀린 예언자''''로 만들며 그를 조롱했다. 질소 비료의 발명, 품종 개량, 기계화를 아우르는 ''''녹색 혁명''''은 식량 생산성을 인구 증가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끌어올렸다. 식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맬서스는 기술 발전의 힘을 과소평가한 비관론자의 대명사로 역사책에 박제되는 듯했다.

하지만 21세기, 세계 인구가 80억 명을 넘어선 지금 맬서스의 유령이 식탁 위를 다시 배회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맬서스를 ''''이겼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녹색 혁명''''이 맬서스의 경고를 새로운 방식으로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경이로운 식량 증산은 공짜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구의 자원을 한계까지 끌어다 쓴 대가였다.

오늘날의 농업은 막대한 양의 화석 연료를 태우는 에너지 집약적 산업이 되었다. 트랙터를 돌리고, 비료를 생산하고, 수확물을 전 세계로 운송하는 모든 과정이 탄소를 배출한다. 또한, 경작지를 만들기 위해 숲과 밀림이 개간되었고, 식량 생산을 가속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물을 끌어다 썼다.

문제는 이 ''''해결책'''' 자체가 이제 ''''덫''''이 되었다는 점이다. 화석 연료 사용은 기후 위기를 심화시켰고, 기후 위기는 다시 가뭄, 홍수, 이상 기온을 일으켜 농업 생산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고 있다. 즉, 인류는 식량 부족이라는 덫을 피하기 위해 지구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덫으로 뛰어든 셈이다.

1968년 폴 에를리히의 『인구 폭탄』이나 1972년 로마클럽의 보고서 『성장의 한계』는 바로 이 지점을 지적한 ''''신(新)맬서스주의''''의 경고였다. 이들의 핵심은 단순히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용력(Carrying Capacity)''''의 한계였다.

전문가들은 2025년이면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굶주리고, 18억 명이 물 부족으로 고통받을 것이라 경고한다.3레스터 브라운 지구정책연구소장은 "인구 80억 명 통제에 실패하면 지구가 1.5개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3이는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며 유기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고 규정한 통찰과 정확히 일치한다.7결국 200년 전 맬서스의 경고는 오늘날 ''''식량 안보''''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꾸라고 요구한다. 과거의 식량 안보가 ''''얼마나 많이 생산하는가''''의 문제였다면, 21세기의 식량 안보는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생산하는가''''의 문제다. 맬서스가 인간의 탐욕과 부의 불평등이라는 ''''분배''''의 문제를 간과했다는 비판도 유효하지만 기후 위기라는 새로운 덫은 ''''총량''''의 한계 역시 실재함을 증명하고 있다. 오늘날의 농업은 화석 연료와 자원 고갈이라는 새로운 ''''맬서스의 덫''''에 걸려 있고 이 덫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200년 전 맬서스가 던진 질문에 대한 현대의 유일한 답이다.



1.2 애덤 스미스의 혁명

‘분업’이 사과 생산성을 폭발시키다

※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년 6월 5일~1790년 1월 12일)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핀 공장의 예를 들어 ‘분업(division of lab)’의 경이로운 생산성 향상을 설명했다. 한 사람이 핀의 모든 공정을 맡으면 하루에 수십 개를 만들 기 어렵지만, 공정을 18개로 나누어 10명이 협업하면 하루 4만 8,000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스미스 자신은 농업이 계절의 순환에 묶여 있어 제조업만큼 정교한 분업이 어렵다고 봤지만 현대 농업은 그의 상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사회적 분업 시스템을 구축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사과 한 알은 결코 한 농부의 손에서만 탄생하지 않는다. 시작은 품종을 개발하는 육종 회사의 연구실이다. 수년간의 연구 끝에 당도와 저장성이 뛰어난 신품종이 탄생하면, 묘목 전문 회사가 이 품종을 대량으로 증식해 농가에 공급한다. 농부는 사과 ‘재배’라는 고도로 전문화된 영역에만 집중한다. 과거처럼 씨앗을 심고 거름을 주는 수준을 넘어, 토양 분석, 병충해 예방, 전지 작업 등 과학적인 영농 기술을 동원한다. 수확된 사과는 곧바로 냉장 시설을 갖춘 물류 전문 기업의 손에 넘어간다. 이들은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통해 전국 각지의 저장고와 유통센터로 사과를 운송한다. 최종적으로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은 정교한 마케팅 전략을 통해 소비자에게 사과를 선보인다.

이처럼 육종, 묘목, 재배, 물류, 마케팅 등 각 단계가 독립된 전문가와 기업에 의해 수행되는 거대한 분업 체계는 전통적인 농업 방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생산성의 폭발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 복잡한 과정을 조율하는 지휘자는 없다.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생산자와 유통업자들의 자발적인 행동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마치 잘 짜인 교향곡처럼 조화를 이루며, 결국 우리 동네 마트 진열대 위에 신선한 사과를 올려놓는 것이다.



1.3 데이비드 리카도의 지구촌 식탁

칠레산 포도는 어떻게 우리 식탁에 오르는가

※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년 4월 18일 ~ 1823년 9월 11일)


애덤 스미스의 분업이 한 국가 내의 효율성을 설명했다면, 데이비드 리카도는 그 원리를 국경 너머로 확장시켰다. 19세기 초 영국, 산업자본가들은 값싼 프랑스산 곡물을 수입해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고 싶어 했고, 지주들은 ‘곡물법’을 통해 수입을 막고 비싼 국내 곡물 가격을 유지하려 했다.4 이 치열한 논쟁의 한복판에서 리카도는 자유무역이 양국 모두에게 이롭다는 ‘비교 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을 제시했다.

그의 논리는 간단했다. 설령 영국이 직물과 포도주 모두를 포르투갈보다 더 잘 만든다 하더라도(절대 우위), 영국은 두 상품 중 ‘상대적으로’ 더 잘 만드는 직물 생산에만 집중하고, 포르투갈은 상대적으로 덜 비효율적인 포도주 생산에 특화해 서로 교환하면 양국 모두가 더 많은 직물과 포도주를 소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잘하는 것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기회비용의 개념을 통해, 모든 것을 잘하는 국가라 할지라도 부가가치가 낮은 상품 생산에 자원을 낭비하기보다, 가장 자신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국가 전체적으로 더 큰 이익임을 증명한 것이다.

이 이론은 오늘날 우리가 한겨울에도 칠레산 포도를 즐길 수 있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한국이 최첨단 난방 온실을 이용해 겨울에 포도를 재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과 자본, 노동력으로 반도체나 자동차를 생산해 수출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반면, 남반구에 위치해 계절이 반대이고 포도 재배에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칠레는 포도 생산에 ‘비교 우위’를 가진다. 결국 한국은 반도체를 수출하고 칠레산 포도를 수입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게 ‘윈윈(win-win)’이 되는 거래다. 리카도의 비교 우위론은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글로벌 농산물 유통망의 이론적 토대가 되어, 전 세계인의 식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1.4 폴 크루그먼: 한국 농업의 숙제

''''규모의 경제''''에서 답을 찾다

※ 폴 로빈 크루그먼(Paul Robin Krugman, 1953년 2월 28일 ~ )


오랫동안 한국 농업은 ''''비교 우위''''라는 고전 경제학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 데이비드 리카도의 이론에 따르면 토지가 부족하고 인건비가 비싼 한국은 농업보다 공산품 생산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이 논리 속에서 한국 농업은 ''''보호''''의 대상일 뿐, ''''성장''''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 그 결과가 바로 현재의 "소규모 영세농 위주의 대한민국 농업 구조"다.

이 구조는 ''''규모의 불경제(Diseconomies of Scale)''''에 갇혀 있다. 농가당 경지 면적이 협소해 고가의 트랙터 한 대를 구입해도, 비료나 농약을 공동 구매해도, 단위 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다. 개별 농가가 신기술 R&D에 투자하거나 해외 판로를 개척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고전적 한계를 돌파할 이론을 제시한 이가 바로 폴 크루그먼이다. 크루그먼은 ''''비교 우위''''만으로는 현실의 무역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무역이론(New Trade They)''''과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 10개념을 통해, 경쟁 우위는 주어진 자연환경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증명했다.

''''규모의 경제''''란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평균 비용이 급격히 낮아지는 현상이다. 반도체나 자동차 산업처럼, 막대한 초기 시설 투자(고정 비용)가 필요하지만 일단 규모를 달성하면 다른 후발 주자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된다. 크루그먼의 이론은 한국이 중공업, 자동차, 반도체 산업에서 어떻게 비교 우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보호무역''''과 ''''전략적 육성''''을 통해 세계적 강자가 되었는지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 ''''제조업의 논리''''를 ''''농업''''에 적용할 수 있을까? 크루그먼의 이론을 농업에 가장 성공적으로 적용한 나라가 바로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한반도의 5분의 1에 불과한 면적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농식품 수출국이 되었다. 이것은 리카도의 ''''비교 우위''''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성과다. 네덜란드의 해답은 농업을 ''''전통 농사''''가 아닌 ''''하이테크 제조업''''으로 접근하는 데 있었다. 그들은 ''''규모의 경제''''를 농업에 이식했다.

첫째, ''''자본의 규모화''''다. 네덜란드는 첨단 기술이 집약된 ''''스마트팜''''과 ''''스마트 온실''''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했다.천장이 높고 너비가 좁은 ''''벤로형'''' 온실을 집단화하여 모든 농작업을 기계화하고, 중앙집중식 복합 환경 제어기로 에너지와 CO2를 최적으로 관리한다.

둘째, ''''지식의 규모화''''다. 네덜란드 농업 혁신의 핵심에는 ''''골든 트라이앵글''''(정부-민간-연구기관)이라는 강력한 협력 거버넌스가 있다. 특히 세계 1위 농업 대학인 바헤닝언 대학을 중심으로 반경 30km 이내에 글로벌 농식품 기업과 연구소가 밀집한 ''''푸드밸리(Food Valley)'''' 12는 R&D와 혁신이 집적되는 심장부다. 정부, 민간, 연구소는 ''''미래의 농장(Farm of the Future)'''' 13같은 실험실 네트워크를 통해 GPS, 로봇, 디지털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현장에 적용한다.

그 결과, 네덜란드는 1농가당 경지 면적이 23.2헥타르에 달하는 ''''규모''''를 달성했다. 물론 높은 스마트팜 건설 비용과 에너지 비용으로 인해 소매가가 높다는 한계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네덜란드 농업이 저부가가치 산업이 아닌, 고부가가치 ''''하이테크 수출 산업''''으로 완전히 전환했음을 의미한다.

폴 크루그먼의 신무역이론은 현재 한국 농업이 마주한 "소규모 영세농 구조"의 개혁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 스마트팜 단지 조성, 농업 법인화, R&D 투자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는 단순히 쌀 한 포대를 더 생산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농업의 ''''산업 구조'''' 자체를 ''''규모의 경제''''를 갖춘 하이테크 산업으로 바꾸는 ''''전략적 게임''''이다. 크루그먼의 이론은 왜 우리가 반도체 산업을 육성했던 그 전략으로 농업을 바라봐야 하는지 명확한 경제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2부 욕망과 독점, 유통의 권력과 소비의 탄생



2.1 카를 마르크스의 질문

왜 산지 배추 값은 밭을 갈아엎는데, 식당 김치 값은 그대로인가?

※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년 5월 5일~1883년 3월 14일)


“산지 가격은 폭락해도 소비자 가격은 그대로인가?” 이 질문은 풍년이 들어 배추밭을 갈아엎는 농민의 한숨과, 식당에서 추가 김치에 돈을 내야 하는 소비자의 의문 속에 매년 반복된다. 이 가격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데 카를 마르크스의 시선은 날카로운 메스를 제공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이 축적될수록 소수의 거대 자본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들이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현대 농산물 유통 시장은 이러한 ‘독점 자본’의 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은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 수집, 저장, 가공, 물류, 도소매 등 여러 단계를 거친다. 과거에는 이 과정이 수많은 중소 상인들에 의해 분산되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소수의 대형 유통업체와 가공식품 기업이 이 유통망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전국적인 저온 유통망(cold chain)과 물류센터를 구축하고, 대규모 구매력을 통해 산지 가격 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구조 속에서 ‘풍년의 역설’은 유통 자본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는 기회가 된다. 산지에서 배추 공급이 7% 늘었을 때, 산지 가격은 30% 가까이 폭락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형 유통업체들은 이미 연간 계약을 통해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했거나, 폭락한 가격에 대량으로 배추를 사들여 저장할 능력이 있다. 이들은 소비자 가격을 산지 가격만큼 내리지 않고, 유통 마진을 극대화한다. 결국 농민의 땀이라는 ‘노동 가치’는 가격 폭락으로 헐값이 되고, 그 차액은 유통 자본의 ‘잉여 가치’로 흡수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분석은 농산물 가격표 뒤에 숨겨진 자본의 권력 관계와 가치 배분의 불균형을 드러낸다.



2.2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농산물 유통, ''''자생적 질서''''는 가능한가?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 CH, 1899년 5월 8일 ~ 1992년 3월 23일)

''''금(金)사과'''', ''''대파 대란''''이라는 말은 식탁 경제의 고질적인 모순을 드러낸다. 산지에서는 가격 폭락으로 농민이 밭을 갈아엎는데, 도시의 소비자는 가격 폭등으로 장바구니를 걱정한다. 복잡한 유통 단계와 물류 비효율이 만든 이 간극 앞에서 정부는 매번 ''''농산물 가격 안정 대책''''을 발표하며 시장에 개입한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이 광경을 보며 인류가 ''''노예의 길''''을 걷고 있다고 경고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 학파의 거장인 하이에크는 정부가 시장을 계획하려는 시도 자체가 재앙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핵심 사상은, 그 어떤 천재적인 중앙 계획자(정부)도 시장에 흩어져 있는 수백만 개의 분산된 지식과 신호를 모두 수집하고 처리할 수 없다는 ''''지식의 문제''''다.

정부의 시장 개입이 왜 실패하는지는 농민들의 불만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풍년이 들었을 때 값을 안정시키는 데는 별 성의를 보이지 않다가 흉년이 들어 값이 오를 기색이 보이면 잽싸게 손을 쓰는 정부". 이러한 정부의 ''''선택적 개입''''은 시장의 가격 신호를 왜곡하고 참여자들의 불신을 초래한다.

하이에크가 제시한 대안은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각자의 지식과 이익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행동할 때, 가장 효율적인 ''''질서''''가 생겨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정부가 ''''효율''''을 명목으로 시장의 작동 방식을 규정하려는 시도는 종종 하이에크가 경고한 ''''지식의 문제''''에 다시 부딪힌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先물류 後거래'''' 방식은 비효율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16, 농산물의 특성을 고려하면 농민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농산물은 신선도 유지가 핵심이며 보관과 물류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 물량을 쪼개 여러 업체와 ''''선거래''''하는 것보다, 한 번에 생산한 물량을 통째로 처리해주는 대형 구매자에게 넘기는 것이 농민의 위험과 비용을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일 수 있다.

최근의 ''''온라인도매시장'''' 논란은 이 딜레마를 정확히 보여준다. 하이에크의 관점에서 볼 때, 진짜 문제는 ''''온라인도매시장''''이라는 기술 자체가 아니다. 이미 ''''정가수의매매''''처럼 사전에 협약된 거래 방식이 존재했으며, 민간 영역에서는 ''''오더플러스'''', ''''마켓보로'''', ''''푸드팡'''' 등 수많은 스타트업이 자생적으로 B2B 식자재 유통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문제는 정부가 ''''심판''''이 아닌 ''''선수''''로 이 시장에 직접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정부가 공공 온라인도매시장을 출범시키자, 기존 민간 시장에 입점했던 90여 곳의 구매업체 중 60여 곳이 참여하지 않는 시장 왜곡이 발생했다. 그 이유는 정부 플랫폼이 ''''진입 장벽''''을 세웠기 때문이다. 기존 업체가 이 플랫폼을 이용하려면 기존 정책 자금을 일시 상환하고, 서울보증보험(SGI)의 신용평가를 새로 받아야 하는등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계획''''된 규칙을 따라야 했다. 이것은 ''''자생적 질서''''를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민간의 자율적인 질서 형성을 위축시키는 ''''노예의 길''''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2.3 소스타인 베블런의 통찰

동물복지 한우에 담긴 메시지, ‘과시적 소비’

※ 소스타인 베블런(Thstein Veblen, 1857년 7월 30일 - 1929년 8월 3일)


우리는 왜 비슷한 품질의 상품이라도 더 비싼 브랜드에 열광하고, 때로는 필요 이상의 돈을 지불하며 만족감을 얻을까?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그 답을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에서 찾았다. 인간의 소비는 단순히 필요를 충족시키는 행위를 넘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타인에게 과시하려는 욕망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과시는 시대를 막론하고 식탁 위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중세 유럽의 귀족들은 영양가 높은 갈색 통밀빵 대신, 많은 노동력을 들여 껍질을 벗겨낸 ‘흰 빵’을 먹으며 자신들이 육체노동에서 해방된 계급임을 과시했다. 조선 시대 양반들이 ‘흰쌀밥에 고깃국’을 최고의 식사로 여겼던 것 역시, 고된 노동의 상징인 잡곡밥을 먹는 상민들과 자신들을 구별 짓는 상징적 행위였다.

오늘날, 이러한 과시적 소비는 더욱 정교하고 복잡한 양상으로 진화했다. 현대의 ‘유한계급’은 단순히 비싼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 자신의 ‘가치관’을 소비한다. ‘유기농’, ‘무항생제’,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한우를 선택하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제품들은 일반 한우보다 훨씬 비싸지만,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여기에는 단순한 미식의 즐거움을 넘어선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나는 내 건강과 환경을 생각할 만큼 경제적 여유와 지적 수준을 갖추고 있으며, 동물의 권리까지 고려하는 윤리적인 소비자’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글로벌 유기농 식품 시장이 연평균 13% 이상 가파르게 성장하고, 동물복지 인증 축산물 구매 경험이 67.5%에 달하는 현상은 베블런의 통찰이 21세기 식탁 위에서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2.4 대니얼 카너먼

''''풍년의 역설''''과 ''''금사과''''에 숨은 심리학

※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1934년 3월 5일 ~ 2024년 3월 27일)

주류 경제학은 오랫동안 ''''합리적인 인간''''(호모 이코노미쿠스)을 가정했다. 인간은 주어진 정보 하에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식탁 경제는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가득 차 있다.

심리학과 경제학을 결합해 ''''행동경제학''''을 창시한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이 "때론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고 선언했다.그의 핵심 이론인 ''''전망 이론(Prospect They)''''은 단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된다. 인간은 1만 원을 얻는 기쁨보다 1만 원을 잃는 ''''고통''''을 2배 이상 크게 느낀다.20이것이 바로 ''''손실 회피(Loss Aversion)'''' 성향이다.

이 강력한 심리적 편향이 농업 시장의 고질적인 두 가지 문제, 즉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와 생산자의 ''''풍년의 역설''''을 설명하는 핵심 열쇠다.

첫째, 소비자의 심리다. "소비자들은 가격하락에 비해 가격상승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지적은 카너먼 이론의 완벽한 사례다. 왜일까? 소비자들은 머릿속에 배추 한 포기, 사과 한 알의 ''기준 가격''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전망 이론의 ''''준거점(Reference Point)''''이다.

가격이 기준보다 1,000원 내린 것(이익)은 잠시 기분 좋은 일로 그치지만, 1,000원 오른 것(손실)은 내 지갑에서 돈을 뺏어가는 ''고통''으로 인식된다. ''대파 대란''이나 ''금사과'' 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합리적 계산이 아니라 ''손실 회피'' 심리가 발동한 결과다.

영리한 마케터들은 농산물을 팔 때 바로 이 ''''비합리성''''을 공략한다. 소비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는'' 그들의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

홈쇼핑 한정판매", "매진임박" 이라는 문구는 ''지금 사지 못하면 좋은 기회를 잃는다''는 ''손실''의 고통을 자극하는 ''희소성'' 전이다.

요즘 이게 유행이에요", "다들 사가네요"라는 말은 ''''나만 이 흐름에 빠질 수 없다''''는 사회적 고립의 ''손실''을 회피하려는 ''''대중성(밴드왜건)'''' 심리를 이용한다. 유기농", "친환경" 이라는 표시는 같은 농산물이라도 ''건강''과 ''안전''이라는 긍정적 ''프레임(Framing)''을 씌워, 비싼 가격을 ''손실''이 아닌 ''가치 있는 투자''로 재인식시킨다.

코너에서 제공하는 공짜 음식은 ''''보답성향(호혜성)''''을 자극해 구매를 유도한다. 이 모든 것은 소비자의 비합리적 심리를 ''''쿡 찔러''''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하는 ''''넛지(Nudge)'''' 기술이다.

둘째, 생산자의 심리다. 카너먼의 이론은 ''풍년의 역설''이 왜 그토록 해결하기 어려운지 완벽하게 설명한다.

풍년으로 10%의 물량이 과잉생산 되었다고 가정하자. 경제학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해법은 "모든 농가가 10%씩 밭에서 폐기"하는 것이다.그러면 가격이 안정되어 모든 농가의 소득이 유지된다. 하지만 이 ''집단적 합리성''은 단 한 번도 제대로 작동한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손해본다"는 ''도덕적 해이(Mal Hazard)''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의 문제다. 바로 ''손실 회피'' 성향이 작동한 결과다.

개인 농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혹은 협동조합)의 말을 믿고 내 밭의 10%를 폐기한다: 이는 나에게 ''확정적인 손실''이다. 내 피땀 어린 작물을 내 손으로 버려야 하는 즉각적이고 확실한 고통이다.

버티고 100%를 출하한다: 이는 ''불확실한 도박''이다. 만약 다른 농가들이 폐기한다면 나는 안정된 가격에 100%를 팔아 막대한 이익을 본다. 만약 다 같이 출하한다면 어차피 가격은 폭락(손실)한다.

카너먼이 증명했듯, 인간은 ''불확실한 미래의 손실'' 보다 ''확정된 현재의 손실''을 훨씬 더 고통스럽게 느낀다. ''나만 손해 볼 수 없다''는 강력한 손실 회피 심리가 농부로 하여금 ''버티는'' 쪽(즉, 도덕적 해이)을 선택하게 만든다. 이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심리적 반응이지만, 집단적으로는 모두가 파국을 맞는 비극을 낳는다.

''풍년의 역설''이 반복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이 필요한 것"이다. 강력한 협동조합(생산자조직)은 "협동조합의 방침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농가는 그 어떤 곳에도 팔 수 없도록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개인에게 고통스러운 ''''손실 회피''''의 심리적 ''''선택지'''' 자체를 제거한다. 집단적 합리성을 강제하는 이 장치야말로, 농민들의 비합리적 심리가 낳는 비극을 막는 유일한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