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아주심기(정식)를 앞두고 있는데, 요즘 오른 기름값을 보면 눈앞이 깜깜하죠. 근처 농가는 벌써 아주심기를 마쳤는데, 난방비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 하더라고요.”
충남 천안에서 시설오이 농사를 짓는 이윤규씨(68)는 난방 수단으로 기름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다. 이씨는 오이 아주심기 이후 겨울 내내 기름보일러를 때야 하는데, 고환율로 최근 한달간 면세유 가격이 올라 경영비 걱정이 크다고 토로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연이어 고공행진하며 1400원대 환율이 ‘뉴노멀(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기준)’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원자재 수입 비율이 높은 우리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울 수 있다는 불안감이 퍼지며, 고환율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농업현장 역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7월 이후 상승세로 돌아서 11월부터는 1450∼1470원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환율이 1540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러한 고환율 기조는 비료·사료 등 필수농자재 원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농업에 큰 부담이 된다. 특히 영세농이 많은 농업구조는 고환율로 인한 경영비 상승에 더욱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
김현식 농협중앙회 미래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일반적인 산업은 원자재값 상승으로 인한 비용 부담을 가격에 전가해 타격을 분산하는 게 가능하다”며 “하지만 물가문제의 최전선에 있는 농산물은 생산자의 의지대로 가격을 올리기 쉽지 않은 구조 탓에 농민이 생산비 상승의 부담을 떠안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최근 높아진 환율에 따른 농자재 가격 상승을 체감하고 있다. 특히 국제유가가 하락하는 상황에 고환율 여파로 국내 유가는 되레 올라 농가 근심이 상당하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인 오피넷에 따르면 국제유가(두바이유)의 1배럴당 평균 가격은 10월 65.0달러, 11월 64.5달러, 12월1∼5일 63.8달러로 하락했지만 농민들이 이용하는 면세경유는 같은 기간 1ℓ당 1096원, 1125원, 1160원으로 상승했다. 시설농가가 난방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면세등유 역시 1104원에서 1140원으로 올랐다.
비료의 핵심 원료인 요소·인산이암모늄(DAP)·염화칼륨 가격도 불안정하다. 요소 가격 강세에 환율 요인까지 겹치면서 농가 부담이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농협경제지주에 따르면 10월 기준 요소 가격은 1t당 평균 446달러로 올초 계약단가(376달러)와 견줘 19% 올랐다.
여야는 경영비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최근 ‘공급망 위험 대응을 위한 필수농자재 등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필수농자재지원법)’을 국회에서 최종 의결했다. 하지만 하위법령 제정 등 실제 제도 가동까지 2년이 남은 탓에 올겨울을 넘겨야 하는 농가는 발만 구르는 상황이다.
농업계에선 당장 경영비 상승으로 고통받는 농가를 위한 신속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과거 ‘시설원예농가 유가보조금 한시 지원사업’과 같이 정부가 농가 경영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대안을 신속히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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