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보고] 日 쌀 정책 ‘증산’으로 전환…당·정갈등 격화
‘생산 억제’ 중심 기조 뒤집고
농지 구획화 등 예산 확대
사실상 ‘소비자 부담’ 완화책
농민·시장 불확실성 ↑ 지적
농민신문 도쿄(일본)=김용수 특파원 2025. 9. 12
일본에서 쌀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8월 ‘쌀 증산’ 선언과 함께 수십년간 유지해온 생산 조정 중심의 쌀 정책을 사실상 뒤집으며 일본 농정은 중대한 전환점에 서게 됐다. 그동안 일본의 쌀 정책은 가격 안정을 위해 생산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추진됐다. 증산 선언은 그 한계를 인정한 것이자 자민당 내 농림족의 기존 정책 노선을 부정하는 신호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농림족 의원들 사이에서는 강한 불만이 터져나오는 상황이다.
앞서 5월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장관)은 취임 직후 쌀값 급등 사태에 대응해 정부 비축미를 신속히 방출했으나, 당과 충분히 협의하지 않고 수의계약 방식을 활용해 농림족의 반발을 불렀다. 당시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모든 사안을 당에 일일이 묻는다면 신속하고 대담한 판단은 불가능하다”고 맞섰다.
이러한 시각차는 쌀 증산 정책에서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농림족 의원들은 “성급한 증산은 가격 폭락으로 이어져 농가 수익을 압박한다”며 신중론을 고수하는 반면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쌀은 누구나 주저 없이 살 수 있어야 한다”며 증산의 필요성을 고집하고 있다. 결국 정부와 당은 ‘증산’ 대신 ‘수요에 맞춘 증산’으로 표현을 조정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한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자민당은 8월26일 농림족 의원 회의를 열고 쌀 증산과 농업구조 전환을 논의할 새로운 조직인 ‘농업구조전환추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위원장에는 지난 5월 “쌀을 사본 적 없다”는 발언이 문제가 돼 물러난 에토 다쿠 전 농림수산상이 임명됐다. 대표적인 농림족 의원이지만 불과 석달 전 퇴진한 인물이 다시 상징적인 자리에 복귀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쌀 증산을 위해 기존에 추진해 온 수전(논) 정책을 2027년부터 전면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내년 예산규모를 올해보다 17% 확대한 2조 6588억엔으로 책정했다. 이 가운데 농지 대구획화와 기반 정비를 추진하는 농업·농촌 정비사업에 올해보다 18% 증액된 3941억엔을 반영했고, 농지를 집약해 경작 희망자에게 임대하는 ‘농지은행’ 사업에도 올해의 3.7배 수준인 161억엔을 편성했다.
또 생산자의 수입이 줄어들 경우 일정 부분을 보전하는 ‘소득보험 제도’ 관련 예산도 16% 늘어난 466억엔을 책정해 증산으로 인한 쌀값 하락이 농가 경영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결국 쌀 증산 정책은 ‘농민·소비자 간 가격 균형’이라는 근본적인 과제를 수면 위로 드러낸 셈이 됐다. 증산이 본격화되면 소비자 부담은 완화될 수 있지만, 농가의 경영 안정은 불투명해지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지에서는 자민당 농림족이 예산안 심사를 무기로 정부를 압박하고, 정부는 소비자 중심 논리를 앞세워 맞서는 현재의 구도가 농민과 시장 전반에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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