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국수산산업총연합회 등 9개 농어민단체가 참여하는 ‘CPTPP저지한국농어민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2022년 4월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CPTPP 저지 한국농어민총궐기대회’를 열고 삭발식부터 상여 가두행진까지 벌이며 정부의 CPTPP 가입 방침 철회를 강력 촉구했다. 사진=한국농어민신문DB
4년 만에 재추진 공식화
비과세장벽 위생·검역 완화로 생과실·신선 축산물 등 위협
수산물 관세 전면 철폐되고 일본산 수입 규제 해제 우려도
농업계 피해 확대 ‘불안 확산’
“실익보다 피해 훨씬 커 가입 검토 즉각 중단” 촉구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김경욱 기자 2025. 9. 5
정부가 일본 주도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검토를 4년여 만에 공식화함에 따라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다시 확산될 전망이다.
정부는 3일 구윤철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경제장관회의 및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한 ‘미 관세 협상 후속 지원 대책’에서 “유사 입장국 간 경제동맹 네트워크를 확보하기 위한 CPTPP 가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최종 가입 방침을 확정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2021년 이후 4년여 만에 재추진 의사를 공식화한 만큼 사실상 가입 수순에 돌입한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 CPTPP 가입 시 농수축산업 막대한 피해 불가피
전문가들은 CPTPP 가입 시 국내 농수축산업에 상당한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18년 발효된 CPTPP는 일본을 비롯해 호주,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멕시코, 칠레, 페루,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브루나이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FTA로, 시장 개방도가 매우 높은 관세 협정이다.
CPTPP의 농산물 평균 관세철폐율은 약 96%, 수산물은 100%에 달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체결한 기존 FTA의 평균 양허율 79.1%보다 훨씬 높아 쌀, 고추, 마늘 등 민감 품목의 추가 개방 압력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정대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CPTPP 회원국 중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하면 이미 모두와 FTA를 체결했기 때문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농업 부문은 민감 품목에 대해 전면 개방을 하지 않은 상황이다. CPTPP는 기체결 FTA보다 훨씬 더 높은 양허 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에 민감 품목의 추가 개방 압력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서진교 GS&J인스티튜트 원장도 “농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 수준은 회원국과의 양자 협상 결과에 달려 있다. 일본은 양자 협상을 통해 농산물 관세철폐율을 76.6% 수준에서 방어했지만, 우리는 CPTPP 가입을 요청하는 ‘을’의 입장이어서 일본 수준의 협상 결과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위생·검역조치 완화 충격 우려
CPTPP는 농산물 시장개방의 폭이 클 뿐만 아니라 동식물 위생검역(SPS), 국영기업, 수산 보조금, 디지털 통상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기존 FTA 통상규범보다 강화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비관세 장벽 중 하나인 SPS(동식물위생·검역조치) 절차 완화에 따른 충격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CPTPP는 SPS와 관련해 수입허용 여부 평가 단위를 세분화하고 있어 지금까지 병해충이나 가축 질병 등을 이유로 막아온 생과실과 신선 축산물의 국내 시장 진입이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대희 부연구위원도 “CPTPP는 지역화를 넘어 구획화를 인정하며, 통상 관련 모든 사안에 대한 정보를 회원국에 제공하는 의무가 있어 검역 주권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최근 한미 관세 협상에서 쌀과 소고기를 지켜냈다고 하지만 검역 부분이 남아있는 불안한 상황인데, 이런 시기에 CPTPP 가입을 추진하는 것은 농업계의 불안감을 더 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일본산 수산물 수입 재개 ‘위협’
수산업계도 위기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CPTPP 가입 시 수산물 관세가 전면 철폐되는 데다, 특히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 해제가 가입 조건으로 붙을 경우 파급력은 상당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도훈 부경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일본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에서 생산된 수산물 수입을 규제하고 있는데, 이를 풀어달라는 요구가 가입의 핵심 선결 조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22년 CPTPP에 가입한 대만도 이 조건을 수용했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같은 요구가 제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영대 한국수산업경영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CPTPP 가입이 확정되면 면세유 등 수산보조금이 중단될 가능성이 높고, 수산물 수입량이 크게 증가해 어업인 피해가 불가피하다. 특히 일본산 수산물 수입 재개는 우리 수산물 전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일방 추진 시 농업계 반발 격화
농업계 반발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4일 성명을 내고 “식량주권 포기하는 CPTPP 가입 검토를 즉각 중단하라”며, CPTPP 가입은 실익보다 피해가 훨씬 클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최범진 한농연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CPTPP 가입은 농업 부문에 상당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한미 상호관세 협상에 따른 여파가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가입을 추진할 경우 이전보다 더 큰 농업계의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영원 전국한우협회 국장도 “호주·뉴질랜드 소고기 수입 확대와 함께 검역 규제 완화 요구도 뒤따를 것이다. 피해 업종이 인정할 수 있는 대책 없이 가입을 추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피해 산업이 납득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도훈 부경대 교수는 “해수부는 CPTPP 가입에 따른 수산업계 피해를 15년간 연평균 69억~724억원으로 추산했지만, 이는 지나치게 낮게 본 측면이 있다. 정확한 피해 추산 자료를 내놓는 것이 급선무다”라며 “피해 대책 역시 단순 보상 수준이 돼서는 안 되고, 시설현대화 등 산업 경쟁력 강화와 생존 기반 마련이 담긴 현실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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