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와 한국농축산연합회, 농민의길, 축산관련단체협의회 소속 농민 1000여명은 7월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파출소 앞에서 열린 ''한미 상호관세 협상 농축산물 개방 반대 전국 농축산인 결의대회''에서 "한미 통상 협상에서 농업을 희생양으로 삼아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김흥진 기자
* 한국후계농업경영인경북도연합회가 7월 25일 실시한 집회에서 농민들이 추가 개방이 우려되는 대표품목, 한우·쌀·사과의 영정사진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 민경천 전국한우협회장(앞줄 오른쪽)이 이영수 대통령실 농림축산비서관(앞줄 왼쪽)에게 농가들의 건의문을 전달하고 있다.
쌀·한우·사과 등 주요 농축산물 한미 관세 협상카드로 거론
“또 농업희생…생업 위협” 반발 정부에 대대적 투쟁 선포
농민단체 잇단 집회·기자회견 국회·시민사회도 비판 목소리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이현우, 홍란, 조성제 기자 2025. 7. 29
기록적인 폭우, 그리고 다시 찾아온 역대급 폭염으로 전국 곳곳의 농산물이 타들어가고 있다. 수확을 포기해야 할지,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지 갈림길에 선 지금, 농민들의 발길은 논밭이 아닌 서울 용산 대통령실로 향하고 있다.
‘국가 책임 농정’을 내세운 이재명 정부 아래에서, 쌀·한우·사과·감자 등 농축산물이 또다시 한미 통상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농민들 사이에서는 한 해 농사 뿐 아니라 생업 전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 서울로 향하는 농민들의 무거운 발걸음
7월 28일 오후 2시,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파출소 앞. 37℃를 넘는 불볕더위 속에 1000여명의 농민들이 모였다. ‘한미 상호관세 협상 농축산물 개방 반대 전국농축산인 결의대회’에 참석한 이들은 절박한 심정을 쏟아냈다. 이들이 우려한 것은 당장의 땀이 아니라, 수십년간 농토 위에 쌓아온 땀방울의 가치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절박한 현실이었다.
이날 집회에는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한국농축산연합회, 농민의길, 축산관련단체협의회 등 4개 종합단체를 비롯해,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등 산하 50여개 단체가 참여해 한목소리로 외쳤다.
“한미 통상 협상에서 농업을 희생양 삼아선 안 된다.”
주요 농민단체장들은 상복을 입고,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쌀 추가 개방,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사과, LMO(유전자변형) 감자 수입 요구 등에 맞서 국내산 쌀·한우·사과·감자의 ''영정사진''을 설치하고 헌화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들은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해당 품목의 국내 산업이 무너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식량주권의 붕괴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을 절박하게 경고했다.
투쟁 발언에 나선 최흥식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은 “정부는 금요일 퇴근시간에 맞춰 기습적으로 농산물도 협상 품목에 포함하겠다고 발표했다”며 “전국 각지에서 농산물 추가 개방을 반대하는 기자회견과 집회가 동시 다발적으로 열리고 있음에도 정부는 눈과 귀를 닫은 채 결국 농산물을 협상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 주권 정부를 내세운 새 정부가 우리 농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식량주권을 포기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이날 집회에 유일하게 참석한 국회의원인 전종덕 진보당 의원은 “수해 복구도 끝나지 않아 일손이 절실한 상황인데, 이 폭염 속 아스팔트에 앉은 농민들의 심정이 얼마나 타들어가겠느냐”며 “도대체 언제까지 통상 협상에서 우리 농업을 내줘야 하느냐. 쌀 한 톨도, 사과 한 쪽도, 소고기 한 근도 더 이상 내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에서 낭독된 전국 농축산인 결의문에서도 농업계의 분노와 절박함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들은 “미국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 국민의 권리를 지켜야 할 통상 당국은 오히려 국익을 운운하며 쌀·소고기·사과 등 대표 품목의 무역 장벽 철폐를 시사해 농축산인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다”며 “단순 시장 논리에 따라 또다시 농축산물을 협상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정부는 국민의 생명산업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며 그 책임은 실로 무거울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농업계는 이날 정부에 마지막 경고를 던졌다.
노만호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상임대표는 “한미 통상 협상 주축인 통상 당국은 농축산 단체와 단 한 번의 소통도 없었다. 이는 농업과 농민을 철저히 외면한 행위이며,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를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라고 강조했다. 이어 “농업의 희생이 강요된다면, 이는 국민 건강과 식량주권, 농업인의 생존권을 짓밟는 것이며, 대한민국 농업 생산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그럼에도 농축산물 장벽을 기어이 허물고자 한다면, 대대적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이날 전국농축산인 결의대회 외에도 농업계 집회와 기자회견은 이어지고 있다.
이날 오전 11시엔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농업농촌먹거리대전환연대회의가 기자회견을 열고 “관세 위협과 농축산물 수입 강요를 중단하라”고 미국을 규탄했다. 이어 11시 30분, 같은 장소에서는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이 ‘트럼프 위협 저지 주권실현 100시간 긴급행동’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관세·식량·안보 등 전방위적 위협을 가하는 트럼프를 규탄한다”며 “이재명 정부는 주권자 국민을 믿고 당당히 맞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7월 25일에는 한국후계농업경영인경상북도연합회가 서울 용산의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한미 상호관세 협상 농축산물 장벽철폐 반대 경북농민대회’를 개최하고, 농업을 희생시키는 정부 통상 전략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날 대회에는 경북 22개 시·군에서 모인 500여명의 농민과 트럭 80여대가 집결해 용산 일대를 가득 메웠다. 농민들은 “한미 관세 협상 반대”, “농축산물 개방 즉각 중단”, “농민 생존권 보장”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정부에 강한 경고를 보냈다.
경북은 전국 사과 생산량의 약 60%, 한우 사육 두수의 약 22%를 차지하는 대표 농업지역으로, 경북지역 농민들은 “이번 시장 개방이 현실화되면 지역 농업 기반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하고 있다.
이날 한농연경북도연합회는 한국의 대표 품목인 쌀·한우·사과가 ‘농업사망’이라고 적힌 관에 차례로 들어가는 상징적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농민들은 △한미 협상에서 농축산물 관세·비관세 장벽 철폐 논의 즉각 중단 △농축산업을 협상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시도 전면 철회 및 식량주권·국민건강권 최우선 수호 △농업계와의 사전 협의 없는 일방적 개방 시도 금지와 농민 의견을 정책에 반드시 반영 △기획재정부 장관과 통상교섭본부장은 농축산업 보호의지 명확히 밝힐 것 등 4대 요구사항도 천명했다.
송종만 한농연경북도연합회장은 대회사에서 “미국은 소고기 수입 제한 철폐, 사과·쌀 검역 완화, GMO 규제 완화 등 농축산업 전반을 뒤흔드는 무도한 요구를 들이밀고 있다”며 “정부는 트럼프의 협박 앞에 농민 보호는커녕 눈치만 보며 협상 테이블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농업의 생명줄 중 어떤 것이 협상카드로 올라갔고, 무엇이 팔려나갈지조차 아무도 모른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협상인가”라고 반문하며, “정부가 외교로 농업을 흥정하고 국민의 생명과 먹거리를 거래한다면, 전국 농민의 분노는 들불처럼 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 정치권 비롯한 각계도 “농업 포기 말라” 경고
한미 통상 협상이 최종 조율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도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7월 26일 성명을 내고 “쌀을 포함한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 검역 완화, 수입규제 축소 등 국민 먹거리 안전과 직결된 사안이 협상의 도구로 전락할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며 “농업을 또다시 통상 협상의 희생양으로 만들려는 시도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식량 주권과 검역 주권은 일시적 외교 성과나 수출 확대의 수단이 될 수 없다”며 “국민의 건강과 생존을 지탱하는 농업의 가치는 결코 협상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훼손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농축산물 추가 개방이나 검역 완화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정부는 협상 마지막까지 농업의 가치를 지키는 원칙을 고수하고, 그 결과에 대한 무한한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식량 주권과 국민 먹거리 안전이 최우선 가치임을 협상장에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등 정부에 3개 사항을 요구했다.
농해수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도 7월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한미 관세협상, 농축산물 시장개방 확대 검토 관련 농민단체 초청 긴급간담회’를 열고, 농업계의 우려를 청취했다. 이후 농해수위 야당 간사인 정희용 국민의힘(경북 고령·성주·칠곡) 의원은 ‘한미 관세 협상에 따른 국내 농축산업 피해 방지 및 지속가능한 농축산업 발전 대책 촉구 결의안’을 25일 대표 발의했다.
정 의원은 “농축산물 시장 개방은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으며, 식량안보와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협상 시한에 쫓겨 무리수를 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 등 여야 대표들도 한미 통상 협상 과정에서 농축산물을 협상 카드로 삼아서는 안 된다<본보 7월 25일자 1면 보도>고 강조했다.
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25일 “정부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압력에 굴복하지 말고, 신중한 대응책을 마련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는 등 농업계를 넘어 시민사회 등 각계에서도 농업을 통상협상의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며 농업계와 연대하고 있다.
|
[한국농어민신문] “실질적 자치 실현 위한 분권형 재정 개편 시급” 
[한국농어민신문] 쌀 내줘야 관세 낮출 수 있다?···''농업 희생 여론몰이'' 분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