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농업 민생 4법’ 처리 과정을 지켜보는 심정이 무척 허무하다. 윤석열정권 시절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야4당과 농민단체들이 함께 만든 법안들이다. 이제 법안을 거부하던 윤석열정부는 없어졌고 법안에 반대하는 국민의힘은 국회 의석의 30%뿐이다. 거부당했던 안 그대로 재추진만 하면 되는 상황인데, 이재명정부와 민주당이 계속 법안을 변형하려 한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당시 이미 이 법안을 수차례 수정해 원안보다 크게 퇴보시킨 바 있다. 비판하던 농민들과 진보야당에 양해를 구하며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 한다”며 윤석열정부를 압박했다. 그런데 정권을 잡은 지금은 벼 재배면적 감축, 재해보험 할증제 존치 등을 추진하며 스스로 정했던 ‘최소한’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윤석열정부 일원으로서 법안 반대의 전면에 섰던 송미령 장관은 어떤가. 본인의 입으로 “농망법”이라고 물어뜯던 법안을 정권이 바뀌자 “희망법”으로 만들겠다며 민주당 의원들과 어깨를 걸고 있다. 법안이 일부 변질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 변화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뀐다면 어째서 그동안 대화의 여지조차 틀어막는 비판을 해온 걸까.
지금의 ‘황당한 화합’은 법안을 밀어붙이던 민주당에게도, 이를 반대하던 송 장관에게도 ‘진심’이 없었다는 걸 증명한다. 2년여를 이어 왔던 양자의 대립은 결국 농민을 위한 진심과 신념의 대립이 아니라 상대를 짓누르기 위한 정쟁에 가까웠다 볼 수밖에 없다.
기만과 야합, 권모술수로 얼룩져 있는 한국 정치판에서 민생 현안이 정쟁의 도구로 활용되는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농업처럼 목소리가 약하고 자본에 치이는 분야에 위정자들의 진심이 없다면, 그곳엔 한탄과 절규가 영원히 계속될 수밖에 없음을 명심했으면 한다. 민주당과 송 장관은 물론, 이 둘을 붙여 놓은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해당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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