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한국농축산연합회 등 농민단체 대표들이 지난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한-미 상호관세 협상 농축산물 개방 반대 전국농축산인 기자회견’을 열고 농업 희생을 강요하는 산업통상자원부를 강하게 규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축산업 부문 ‘위생·검역’ 장벽 해지 압박 확대
농업계, 미국에 당당히 맞서라며 ‘대규모 결집’
“소고기 추가개방, 협상카드로 어렵다”는 시선도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한우준 기자 2025. 7. 25
미국 트럼프 정부의 무역협상은 25%에 달하는 상호관세뿐 아니라 비관세장벽 해지 압박 등으로 구성된다. 비관세장벽은 지난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하기 직전에 제출된 미국무역대표부(USTR)의 ‘국별무역장벽보고서(NTE)’에서 그 내용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으며, △무역기술장벽 △위생·검역(SPS)장벽 △정부조달 △지식재산권 △서비스(시청각·보험 등) △디지털 통상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있다.
이 중 농업부문은 위생·검역장벽 해지 요구에 직면한 상태다. USTR은 NTE를 통해 △비효율적인 생명공학 제품 승인 절차 △월령 제한(30개월 미만) 및 일부 가공육 수입 금지 조치 △반추동물 성분이 포함된 애완동물 사료 시장의 부족한 접근성 △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 관련 우려 등을 비롯해, 현재 계류 중인 △블루베리 수출 확대 요구 △감자 시장 접근 확대 △체리 수입 구조 개선 △사과·배·미니당근·딸기·캘리포니아산 핵과류·냉동 라즈베리와 블랙베리에 대한 시장 접근 요청 등을 지적했다.
이에 이를 근거로 해당 부문의 장벽 해지가 무역협상의 주요 논제로 떠오른 실정이다. 수면 위로 가장 많이 떠오른 항목은 사과 수입 검역 절차 간소화와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허용, 쌀 시장 추가 개방 등이다. 미국 측의 개방 요구가 지속적으로 개진돼 왔고,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정부가 철강·자동차·반도체 등 제조업 분야 피해 경감 목적으로 과거에 그랬듯 농업부문 비관세장벽 해지로 시장을 내줄 가능성 또한 크기 때문이다. ‘관세화 협상’을 통해 저율관세할당물량(TRQ)만을 수입하고 있는 쌀도 트럼프 대통령이 주시하는 목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의 협상 전면에 선 정부 관계자의 발언이 이러한 위기감을 갈수록 확산시키고 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4일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발언과 함께 우리 농축산물 시장의 추가개방 가능성을 언급했다.
농업계는 ‘분노 속 결집’
소고기와 쌀은 모두 이미 미국이 국내 시장에 가장 많은 물량을 수출하고 있는 만큼, 미국의 일방적인 농산물 시장개방 압박에 이어 이를 수용하는 듯한 정부의 태도까지 노출되자 농업계에선 근래 보기 드물었던 대단위 결집이 추진되고 있다.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한국농축산연합회·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축산관련단체협의회 4개 농민단체 연대체는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전국 농축산인 기자회견’을 열어 상호관세를 요구하는 미국과 우리 정부의 태도에 분노를 표하고, 농축산물 추가개방 검토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국내 대표 협의체가 모두 참여하는 단체행동은 보기 드문 일로, 사실상 모든 농민단체·농축산품목단체가 반대 의견을 제출한 셈이 됐다.
당장 직접적인 피해가 우려되는 품목의 농가들 사이에선 미국이 먼저 한-미 FTA의 틀을 깨고 있는 만큼 우리도 똑같이 상호관세를 부과하자는 목소리까지도 나온다. 민경천 전국한우협회장은 “우리나라는 이미 미국산 쇠고기 최대 수입국으로 내년이면 관세가 완전히 철폐된다. 날개를 단 미국산 쇠고기는 한국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될 것”이라며 “그럼에도 미국이 상호관세를 명분으로 한다면, 오히려 우리 정부가 미국산 소고기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요구했다. 하원오 농민의길 상임대표는 “조속한 협상을 이유로 농업을 희생시키지 말고 주권국가로서 당당하게 미국의 협상에 맞서 싸우는 것이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한 이재명정부에게 국민이 기대하는 바”라고 강조했다.
“미국산 소고기·쌀, 현실적으로 추가개방 어려워”
한우와 쌀의 추가개방을 위해서는 각각 입법·무역협상의 영역에서 큰 장벽을 넘어야 하는 만큼, 농민들의 반발과 맞물려 현실적으로 이번 관세협상에서는 우리 측 카드로 고려되기 어렵다 보는 시선이 있다. 소고기의 경우 지난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위생조건을 고시하는 과정에서 함께 개정된 「가축전염병예방법」으로 인해 수입위생조건의 변경을 위해선 국회를 설득해야 한다. 쌀 또한 세계무역기구(WTO) 내 협의를 통해 40만8700톤의 저율관세할당 물량 및 이를 채울 미국 등 5개국의 할당량이 이미 정해져 있는 만큼, 우리나라 입장에선 특정국가에만 관세나 수입량에서 특혜를 허용하기 어려운 처지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관련한 장·단기 전망을 다룬 보고서에서 “가전법 개정 및 수입위생조건 체결 과정에서 나타난 국내 소비자들의 우려, 정치적 상황, 사회적 가치 등을 종합하면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단기간 내 트럼프 관세 협상에서 우리나라가 포기할 비관세조치 협상 카드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30개월령 이상 소고기의 수입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신뢰성 있는 식품 안전 정책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지, 트럼프 관세 협상 카드와 같은 단발적 대응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라고 지적했다.
주요 언론에서도 쌀과 소고기가 협상 대상에서 빠질 것이란 관측을 내놓은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3일 설명자료를 통해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라며 이를 부인한 상황이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우리 농업의 민감성을 최대한 반영하고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만을 거듭 중이다.
내달 1일 상호관세 예정 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우리 정부의 협상 기조에 농업계는 물론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농민들은 협상 기한에 임박한 28일에도 다시금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결집된 집회를 열고 우리 정부 압박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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