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범준 대표(왼쪽)는 아버지 박한용 씨(62)가 개발한 200여 종의 품종을 제품화하기 위해 종자사업을 시작했다.
* 잘 만든 종자 하나가 연간 1억 5000만~3억 원의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기도 한다.
* 박 대표는 4000여 종의 유전자원을 활용해 신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30여 년 무 품종 연구한 부친 이어 사업화 도전
디지털농업 7월호 기자 글 이소형 chr(124)_pipe 사진 현진
이 기사는 성공 농업을 일구는 농업경영 전문지 월간 ‘디지털농업’ 7월호 기사입니다.
박범준 씨가 무 종자사업에 뛰어든 건 아버지가 육종한 우수 신품종을 제대로 생산·보급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무 품종 200여 개를 판매 대상에 따라 맞춤 공급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 재배 기계화·생력화, 종자 브랜딩 등으로 무 농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싶다는 그를 만나봤다.
기후변화로 나날이 농사짓기가 힘들어지면서 품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좋은 품종을 새로 만드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이런 농업 환경의 변화 속에서 종자산업에 뛰어든 이가 박범준 농업회사법인 다산바이오㈜ 대표(27)다.
“아버지께서 30여 년간 무 품종을 연구하셨어요. 종묘회사에 근무하시다가 지금은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신품종을 개발하고 있죠. 덕분에 4000여 종에 이르는 다양한 무 유전자원과 상품화 가치가 있는 품종 200여 개를 확보하고 있어요. 저는 이를 사업화하기 위해 창업을 했습니다.”
박 대표는 2023년 회사를 설립해 현재 무 종자 생산·판매는 물론 직접 재배까지 하고 있다. 부속 연구소에선 신품종 연구도 한다.
“정식으로 회사를 설립한 건 2023년이지만 이전부터 4~5년간 아버지의 연구를 도우며 현장 상황을 파악했어요. 종자 재배 기술과 함께 품종별 재배 특성을 알아야 하니까요.”
아직 27세의 앳된 청년이지만 그는 어엿한 회사 대표로서 면모를 갖추고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 척척 해내고 있다.
한국농수산대 다니며 종자사업 꿈 키워
한국농수산대학교 채소학과를 나온 박 대표는 농업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육종가인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 역시 지역 농업기술센터에서 연구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농부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진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런 저에게 부모님께서 농수산대 진학을 권유하셨어요.”
박 대표가 종자산업의 비전을 본 건 대학교 2학년 시절 뉴질랜드에서 장기 현장 실습을 하면서였다. 뉴질랜드는 세계 최대 종자 생산국 가운데 하나로 종자 생산을 위해 대규모로 작물을 재배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았다고 한다. 이후 박 대표는 농식품 벤처창업 인턴제(한국농업기술진흥원, 2022), 농식품 창업 해커톤(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2022), 한국·뉴질랜드 FTA 농수산업 훈련 연수(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2024) 과정 등을 이수하며 종자사업을 이끌어갈 역량을 키웠다.
“종자 연구를 하면서 동시에 재배와 판매·유통·마케팅을 배워 창업하면 경쟁력이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업을 시작한 건 신품종 기술이전 후 종묘사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에요. 오랜 기간 어렵게 육종한 우수 품종이 재배법 지도 등 고객 관리를 제대로 못해 농민들이 외면하는 일이 종종 있어요. 또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품종을 가공식품 기업 혹은 농민, 텃밭 재배하는 분 등 대상에 따라 맞춤형으로 판매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봤지요.”
종자 B2B로 매출 신장…‘기능성 무’는 직접 생산·홍보
하지만 막상 사업을 시작하자 모든 것이 어려웠다. 경쟁력 있는 품종과 육종 기술만 믿고 창업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여긴 게 문제였다.
“먼저 종자를 대량 생산하려니 생각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증식 과정도 어렵지만 재배 기술 지원, 농가 관리, 생력화·기계화 등을 통한 규모화도 필요하다는 걸 느꼈죠. 가장 힘든 건 기존 종자업체들과의 경쟁이에요. 종자는 총판을 통해 전국 대리점에서 유통되는데 새로운 상품의 진입이 쉽지 않았어요.”
이에 차선책으로 그는 기업 간 거래(B2B)를 시도했다. 영업력을 갖춘 종묘사에 종자를 납품해 그들이 브랜딩을 통해 판매하도록 한 것. 이로써 박 대표는 2023년 4억 원의 매출액을 올릴 수 있었다.
“일반 무(흰 무)는 B2B로 판매하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기능성 무(유색 무)는 선호도가 떨어져 판매가 어렵고 시장 규모도 작아요. 일반 무 종자 시장 규모는 440억 원쯤 되는데 기능성 무 시장은 0.1%에 불과한 실정이죠. 그래서 직접 기능성 무를 재배해 판매하는 방법으로 종자를 알리는 전략을 펼쳤어요.”
2023년과 2024년 그는 수박무를 생산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와 현대백화점·전통시장 등에서 판매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스마트스토어에서는 고객 반응이 좋아 일반 무의 2배 가격임에도 상위 노출이 되는 등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
“기능성 유색 무는 회사의 인지도를 높이는 한편,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어 유리한 면이 많아요. 그래서 앞으로 특정 품종에 집중해 종자와 무 생산·가공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관리하며 차별화된 브랜드를 구축하려고 해요. 간단히 말해 미리 농산물 가공업체와의 업무협약(MOU)으로 판로를 확보한 후 지역 농가와 계약재배로 품종을 공급하고 수확 후 납품하는 방식이죠. 이를 위해 현재 가공식품 업체 등과 활발히 접촉하고 있어요.”
이 밖에도 박 대표는 2024년 일본 기업과 수출 계약을 맺어 1만 달러어치의 무 종자를 수출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는 일본인들이 선호할 만한 품종을 개발해 2년 안에 10만 달러의 수출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다.
품종 브랜딩으로 인지도 높이며 성장하고 싶어
현재 다산바이오는 경기 평택에 2만㎡(6000평)의 채종포, 경기 여주에 1만㎡(3000평)의 품종 육성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채종을 위한 무 농사는 작기와 재배법이 일반 농가와 달라요. 육묘는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하는데 추대(꽃대 나옴)가 잘되도록 저온처리한 후 3~4월에 아주심기하고 6~7월에 종자를 수확하죠. 무 생산은 채종포에서 종자 수확 후 2기작으로 가을무와 월동무를 직파재배로 하고 있어요. 회사를 운영하려면 당장 매출이 발생해야 하니까요. 또 직접 무를 생산해봐야 재배 기술도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죠.”
현재 다산바이오는 품질 좋고 경쟁력 있는 무 품종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한여름무>는 한때 여름무 시장의 60~70%를 점유했던 인기 품종인 <관동여름무>를 개선한 품종으로, 생산성이 높고 무름병 저항성이 있을 뿐 아니라 고온건조한 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특징이 있다.
사계절 내내 파종이 가능한 품종도 있다. 월동무 품종인 <늘봄>이 그것으로, 내한성이 뛰어난 데다 재배 기간을 표준보다 길게 잡으면 지속적으로 생장해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이 밖에 당도가 20~22브릭스에 이르는 <마라톤무>는 빨간색 무로 사포닌·펙틴·베타인 등을 함유하고 있다. 또 겉은 초록색, 속은 붉은색을 띠는 <수박무>는 글루코시놀레이트를 다량 함유하고 있으며 단위면적당 생산량도 기존 야생종보다 많다고.
이처럼 종자산업 발전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박 대표는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그는 “올해 무 종자 계약재배가 뉴질랜드에서 시작됨에 따라 단호박 종자 수출도 해볼 생각”이라며 “‘제스프리’ 같은 브랜드를 만들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우수 품종을 많이 육성·판매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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