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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어민신문] 있어도 없고, 없어서 더 없는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5-07-23 조회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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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호의 보통농정] 있어도 없고, 없어서 더 없는



                                                                          김규호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  2025. 7. 22



 관세 조치로 한동안 속을 끓인 농업계에 이번엔 비관세조치와 관련해 ‘여론을 떠보려는 듯한’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미국과의 치열한 통상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최근 들어 종종 쇠고기와 사과와 LMO라는 ‘카드’가 따로 또 같이 뉴스를 장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한국이 미국 쇠고기의 최대 수입국이고 한-미 FTA 관세 스케줄에 따라 계속 낮춰온 미국산 쇠고기의 관세도 내년부터 0%가 되는데 소위 ‘30개월 이상’ 여부로 우리가 마냥 수세에 몰리는 형국이, 이게 맞나 싶다.


 탐정의 대명사 ‘셜록 홈즈’ 시리즈 중 ‘실버 블레이즈(Silver Blaze)''라는 작품이 있다. 경마 대회를 앞두고 ''실버 블레이즈''란 이름의 명마(名馬)가 실종되자 홈즈가 호출된다. 자초지종을 듣고 몇 가지 조사 뒤 사건의 전모에 대한 설득력 있는 추리를 완성한 홈즈. 허나 늘 그렇듯 제 생각을 한 번에 다 공유하지 않는 그에게 수사 책임자인 경위가 묻는다. ‘제가 주의해야 할 다른 점은 없나요?’ 홈즈가 말한다. ‘그날 밤, 개의 이상한 행동에 주목하십시오.’ 의아해하는 경위. ‘그날 개는 조용했습니다만...’, ‘그게 바로 이상한 점이죠.’ 홈즈의 답이다.

지난 5월 감사원이 발표한 한 감사보고서(농산물 수입 및 양곡 매입에 대한 감사) 중 농산물 수입 관련 내용 일부를 다소 박하게 한 줄로 요약하면 ‘그때 심의회는 조용했습니다.’가 된다. 감사 대상 기간 내 농축산물무역정책 심의회가 22차례 개최되었으나 모두 서면심의였고 출석 회의는 전무했다. 이 과정에서 ‘심의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와 기간’이 제공되지 않았고, 이 중 적어도 5건은 서면심의 사항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감사원의 지적이다.


UR 협상 이후 양허 물량에 대한 시장접근 기회를 수출국들에 보장하되 그 이상의 물량에는 고율관세를 부과하기로 수출입국 간 합의한 TRQ(Tariff Rate Quota)의 이 기간 내 7차례에 걸친 증량도, 매번 요청하는 쪽(농식품부)은 필수자료 일부를 빠뜨린 채로, 요청받은 쪽(기재부)은 그걸 또 핵심 문서가 아니니 괜찮다고 판단한 채로, 결정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정이 ‘생산농가에 미치는 영향’이나 ‘이후 3년간의 국내도매가격과 생산실적 전망’ 같은 자료가 핵심이 아니면 무엇이 핵심일까.

그나마 이처럼 감사원이 ‘주의’ 요구한 사항들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을 뿐 규정과 기관과 절차는 있는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가령 감사보고서 각주에 명시된바 할당관세 부과 관련 심의회는 ‘심의회 개최 의무규정이 없어’ 출석 회의 의무 개최 대상이 아니다. 2024년 4월 정부는 양배추, 당근, 배추, 포도 등에 할당관세를 적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전 10년간 할당관세가 적용된 적 없던 이들 품목의 관세를 낮추는 조치가 농축산물무역정책 심의위원들이 따로 자리 한번 가질 일조차 아니었단 소리다.

규정이 없으니 규정에 비추어 무엇이 문제인지를 짚어보고 예상되는 우려를 논하는 일 자체가 성립 불가해지는 경우는 이뿐이 아니다. 관세 조치로 한동안 속을 끓인 농업계에 이번엔 비관세조치와 관련해 ‘여론을 떠보려는 듯한’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미국과의 치열한 통상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최근 들어 종종 쇠고기와 사과와 LMO라는 ‘카드’가 따로 또 같이 뉴스를 장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한국이 미국 쇠고기의 최대 수입국이고 한-미 FTA 관세 스케줄에 따라 계속 낮춰온 미국산 쇠고기의 관세도 내년부터 0%가 되는데 소위 ‘30개월 이상’ 여부로 우리가 마냥 수세에 몰리는 형국이, 이게 맞나 싶다. 사과든 무슨 품목이든 미국이든 어느 나라든 WTO의 동식물 위생·검역(SPS) 규정과 국제식물보호협약(IPPC)에 근거해 국내에 들여올 때면 8단계 수입위험분석 절차를 거쳐야 하건만, 여태 3단계를 넘지 못하던 과일이 혹 어느 날 협상단 간 악수로 모든 단계를 클리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느 세계관의 ‘과학’인지 모르겠다. ‘완전표시제 도입’ 공약의 대상이던 GMO도 정부가 평소 하던 이야기와 온도 차가 커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그래도 국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겠지만, 그 ‘종합’의 어느 ‘부분’에 농업의 자리와 자격이 주어져 있는지는 법규로도 경험으로도 불분명하다. 「통상조약의 체결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의 제4조(정보공개), 제5조(보고 및 서류제출), 제7조(공청회의 개최), 제10조(통상협상의 진행 및 국회의 의견 제시) 등은 자국 내 다양한 산업과 계층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조항들인데, 여기에서 정부의 보고의무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통상 관련 특별위원회 등만 대상으로 하고 있어 농업이 배제되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구조다. 농업 부문에서 양보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당사자인 농업은 미디어를 통해 뒤늦게 전해 듣는다. 그러나 도량형 단위와 기구가 없다고 ‘길이’나 ‘무게’가 사라지는가.

현대 민주사회에서 통상협상은 ‘대외협상’과 ‘대내협상’으로 이뤄진 ‘양면게임(two-level game)’의 성격을 갖는다. 전문 관료가 주도하는 긴박한 협상 과정과 외교 관례상 비밀 유지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산업별, 계층별 손익이 다를 수밖에 없는 대외협상 추진 시에는 사전에 여러 경로와 채널을 통한 대내협상에도 힘을 기울여 사회적 후유증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법제에 허점이 있다면 이를 고쳐야 하고, 법제의 취지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대내협상에 임함이 옳다.


어쩌면 이 땅의 공론장에서 농업과 농촌은 있어도 없다. 그렇게 시야에서 잘 안 보여 더 없어지는 일에 사회 전체가 익숙해지니 워치독(Watchdog)도 있으나 없다. 홈즈처럼 내처 말하지 않는 짓궂은 취미 같은 건 내 취향이 아니지만, 사실 이 글을 쓰는 내내 나는 반복되고 누적되는 농업 부문의 피해가 이제 이 나라에서 ‘사회적 후유증’의 축에도 들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시달렸다. 그래도 무방해 그러고 사는 우리가 가득 모여 이룬 ‘공화국(共和國)’이 우리 농정이 놓인 자리다. 이 보통의 자리 위로 쇠고기, 사과, LMO라는 풍문이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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