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저장해 침수 예방해야 하지만
설계기준 낮춰 폭우 방재 역부족
저수지 붕괴 우려…“정비 시급”
농민신문 김소진 기자 2025. 7. 22
기후재난이 매해 거세지고 있다. 극한호우의 강도가 갈수록 커지는 데다, 최근에는 일주일 사이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닥치는 복합재난 양상까지 나타났다. 하지만 농촌지역의 재해 대응 시설은 여전히 과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전문가들은 배수펌프장 등 기반시설의 전면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폭우 피해가 커지는 데는 낡은 방재 시설의 한계가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배수펌프장이 대표적이다. 집중호우 시 빗물을 강제로 퍼내 침수를 막는 핵심 시설이지만, 전남 나주 등 일부 지역에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 익산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농촌지역 배수펌프장 1026곳 가운데 722곳이 내구연한을 초과한 상태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에 설치된 경남 밀양 수산배수펌프장은 설치된 지 거의 100년에 가까워 성능과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경남 창원 대방배수펌프장도 제1공화국 시절인 1955년 세워져 70년이 됐다.
우수저류시설은 집중강우 시 빗물을 일시적으로 저장해 하수도 용량 초과를 막고, 하천 유출량을 조절해 침수와 홍수 피해를 줄이는 시설이다. 주로 도시지역 침수 예방을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설치·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50년에 한번꼴로 발생하는 폭우에 대비해야 하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시설이 29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의원에 따르면, 이들 시설은 공사비 절감을 이유로 설계 기준이 낮춰졌다. 기준이 하향된 시설에는 19일 폭우로 큰 피해를 본 경남 산청 등도 포함됐다.
이번 폭우로 최근 일부 저수지 제방이 유실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노후화한 저수지 붕괴 우려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임미애 민주당 의원(비례대표)에 따르면,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전국 저수지 3429곳 가운데 70년 이상 된 시설이 2024년 기준 46.6%(1597곳)에 달하며, 이 중 100년 이상 된 곳도 20곳이나 된다.
전문가들은 재해 대응을 위한 기반시설 정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강정현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저수지와 배수로 등 주요 시설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며 “이를 관리하는 수리관리원은 인력도 부족하고 고령화가 심각해, 운영의 스마트화 등 관리 방식 개선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가 위력을 더해가는 만큼, 중장기적 대응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홍상 농정연구센터 이사장은 “예전에는 지대가 낮은 논에 벼를 주로 심었지만, 지금은 시설작물을 많이 재배해 몇분만 침수돼도 피해가 크다”며 “가뭄과 폭우 같은 재해에 대비해 지역 단위 토지 이용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광야 충남대학교 연구교수(한국농공학회 기술부회장)는 “단순히 시설을 개보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설이 관할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농경지와 주변 공간까지 포함해 정비하는 차세대 농업생산기반 구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현행 체계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는 만큼, 농림축산식품부 내에 기후문제와 기반시설을 함께 다루는 국 단위 전담 조직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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