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당국, 경영비 예산 홀대에
증액 권한 없는 국회 속수무책
전기요금·유가 지원 예산 등
추경에 농업계 요구 반영 안돼
정부의 체계적 지원 근거 담은
‘필수농자재지원법’ 대안 부상
농민신문 양석훈 기자 2025. 5. 8
농업계의 강력한 요구에도 이번 추가경정예산(추경)에 농가 경영비 지원 예산은 ‘무기질비료 가격보조 및 수급안정 사업’ 일부가 반영되는 데 그쳤다. 경영비가 환율과 유가, 글로벌 공급망 흐름에 따라 널뛰며 농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가운데 예산 증액권이 없는 국회에 계속 의존하지 말고 관련 예산 편성을 위한 정부의 책무를 법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근 확정된 13조8000억원 규모의 추경은 농업계엔 반쪽짜리로 평가된다. 추경의 동력이 된 영남권 산불이 농업 생산기반과 농촌 공동체에 깊은 상흔을 남겼지만 추경에 농심을 보듬을 만한 예산은 이에 견줘 부족해서다.
농업계 요구로 반영된 건 무기질비료 예산 255억원이 전부다. 정부안에 없던 게 국회를 거치며 반영됐는데, 그나마 현장에서 요구한 372억원에 못 미치면서 지원 물량이 계획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2023년에 이어 올 하반기 또 한번 인상이 예상되는 농사용 전기요금의 지원 예산 확보는 불발됐다. 도축장 전기요금 특별지원과 시설농가 면세유 유가연동보조금 한시 지원 예산도 제외되면서 농업계는 이번에도 재정당국의 높은 문턱을 재확인해야 했다.
예산 편성 열쇠를 쥔 재정당국의 경영비 예산 홀대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무기질비료의 경우 정부가 2024·2025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한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2024년 예산은 국회가 심의 과정에서 살려냈지만 올해는 실패했다. 농사용 전기요금도 비슷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지난해와 올해분 증액을 요구했지만 모두 반영되지 않았다.
경영비 상승 국면이 이어지는데도 이를 지원하기 위한 예산이 정부 의지나 재정 운용 방침에 따라 반영되고 말기를 반복하자 국회는 경영비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만드는 작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지난해초엔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공급망 위협, 국제 에너지 가격의 상승으로 경영상 부담이 급증한 농업경영체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예산 범위에서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하지만 이때도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지원해야 한다’는 원안의 의무조항이 임의조항으로 바뀌었고 ‘예산 범위에서’라는 단서까지 붙으면서 개정안은 유명무실해졌다.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의원(제주갑)에 따르면 법 개정 이후 정부가 이 조항을 근거로 사업을 신설하거나 예산을 편성한 사례는 전무했다.
이에 대안으로 이른바 ‘필수농자재지원법’ 제정이 거론된다. 비료·유류·퇴비 등 농자재와 에너지 비용이 급등한 경우 이를 정부가 체계적으로 지원하도록 법적 근거를 만드는 내용으로 22대 국회 들어 민주당에서 5건, 진보당에서 1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법안을 발의한 문 의원은 “일부 지자체에서 조례로 농자재를 지원하지만 재정 여건에 따라 한계가 있다”면서 “최근 경영비 상승으로 위기를 맞은 농가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력 대권 주자인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농정공약에도 이런 내용이 담겼다. 그는 최근 공개한 ‘농업강국 정책발표문’에서 “생산비 부담을 덜어드리겠다”면서 ‘필수농자재 지원 제도의 도입’을 약속했다.
아직 관련 입법 절차가 속도를 못 내는 가운데 향후 국회가 재정당국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화학비료와 화석연료에 대한 지원이 시대 흐름과 배치된다는 일각의 지적도 넘어서야 한다. 서세욱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올초 ‘필수농자재지원법’ 제정을 위한 국회 공청회에서 “투입재에 대한 보조금은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정상 감축 대상에 해당한다”면서 “제정안에 따라 지원이 이뤄지면 보조금 총량 규모를 초과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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