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수입·방출에 생산기반 쑥대밭…쌀값 폭락률 45년만에 최대”
농업인신문 유영선 기자 2025. 4. 11
“에너지·원자재 가격상승 등 공급측 상방리스크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경기침체의 가능성이 짙습니다. 현 단계에서 물가안정대책이 필요합니다. 특히 농축산물 및 식품 수급변동 상황이 심각한데, 이는 수입산을 풀어 가격을 낮추는 방안이 효과적입니다.”
2022년 7월 11일 뜨거운 여름 용산 대통령집무실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의 기재부 업무보고가 한창이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정부 부처별 업무보고다.
이날 이후 기재부가 추가로 발표한 부문별 물가안정대책은, 7월 비축분 감자 조기방출 및 호주산 700톤 수입, 마늘·양파 비축분 방출 및 중국·일본으로부터 저율할당관세(TRQ) 물량 수입 방출, 무·배추 비축분 방출, 대파 할당관세 0% 적용 수입 등이었다.
축산물의 경우 돼지 삼겹살 할당물량 2만톤 증량, 미국·호주산 쇠고기 10만톤 할당관세 적용, 닭고기 8만2천500톤 할당관세 적용 수입 등도 곁들였다. 윤석열정부의 농업정책 첫 단추였다.
이렇게 물가문제를 수입산 방출 완급조절로 일관하던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 정부의 농업정책 또한 지속적인 추진에 명분을 잃었다.
그동안의 윤석열 농정은, ‘쌀값 전쟁’ 이었고, ‘수입 농산물 방출’ 이었고, ‘농업예산 부족’ 이었다. 3년의 집권기간에 농민단체는 ‘갈라치기’ 정쟁에 동원돼 골깊게 분열됐고, 금방 수확한 햅쌀을 배합사료용으로 이용하는 농업가치의 몰락이 자행됐다.
농업을 미래성장산업으로 키우고 농촌을 활기찬 공간으로 만든다던 윤석열농정은, 고금리 담보부족 신용불량 농민을 양산했고, 농업소득은 외면됐고, 물가대책 하위정책 수단으로 농업생산물이 도구화됐다. 윤석열농정의 몇가지 사례를 본다.
“벼농사가 죄”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5월 산지 쌀값은 80kg들이 한가마에 18만6천원선이었다. 계속 하락세를 타던 중이었다. 이때 정부는, 쌀 수요를 늘리고 가루가공형 쌀로 대체해서 충분히 수요 창출에 나설 수 있다고 호언했다. 이것이 쌀값을 올리는 근본적 방법이라고 했다.
그해 수확기 쌀값은 최대 하락폭으로 18만7천원선을 찍었고, 쌀값 바닥세는 해를 넘겨서까지 계속됐다.
“쌀에 편중된 자급구조를 다양화하겠다” “쌀 예산 편중이 심하다” “구조적 쌀 과잉생산이 문제다” “99.6%에 달하는 쌀농사 자동화율이 과잉생산을 부른다” “농민들이 쉬운 쌀농사에 몰려있다”…
정부의 양곡정책에 관한 미온적 접근은 쌀값이 농정의 최대 이슈로 부풀어 오르는 현상을 낳았다. 정부는 벼농사짓는 농민들에게 ‘과잉생산’ 이란 죄명을 얹어,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떠밀었다.
윤석열정부의 냉담한 쌀 정책이 이어졌다. 윤석열정부의 ‘제1호 거부권’ 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이었다.
“양곡관리법은 상당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는 윤 전 대통령의 언급은 농민들이 벼농사에 몰려 있기 때문이라는 도덕적 해이를 지적한 말이었다. 매년 1조원이 넘는 재정이 소요되고 쌀 정책에 치우친 혜택 때문에 벼농사만 짓게 된다는 논리였다.
이때의 거부권은, 쌀값이 낮아진다고 가격보호 안정장치, 즉 시장격리 의무제를 제도적으로 허락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농민들은 양곡법 개정안에 대해 탐탁지 않아 했다. 자동시장격리제 뿐 아니라, 쌀에 대해 생산비를 포함한 최저가격을 보장할 수 있도록 공정가격제를 제도에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윤석열정부는 지난해 12월 탄핵정국까지 총 2회 거부권을 발동했고, 결과적으로 국회에서 3번 폐기처분됐다. 윤석열정부는 농수산물유통 및 가격안정법도 싫어했다.
농업계가 농산물 가격을 보장하는 내용을 넣자는데, 윤 전 대통령은 거부했다. 농산물 가격이 기준치 밑으로 떨어지면, 농가의 경영 안정을 위해 정부가 그 차액을 생산자에게 보상하는 상식 수준의 법 개정을 거부했다.
“가격변동성 큰 농산물, 시장위험관리 잘하겠다더니”
윤 전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농산물 시장위험관리는 결국, 농축산물 대량 수입으로 수급불안을 틀어막는‘보여주기식’시그널로 점철됐다. 농축산물 비축분으로 안되면 TRQ물량을 늘리거나 기간을 단축토록 유통업체들에게 권고하는 형식이 주를 이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적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상승+경기침체)이 발생하던 2022년 7월 기재부는 생활밀착 품목에 대해 대대적 수입확대 대책을 발표했다. 대부분 농축산물이다.
물가정책 구실이기 때문에 효율성을 따져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들에게 출하가격을 억제토록 지시했다. 생산비도 못미치는 가격인데도 시장에 내놓는 가격을 후려쳤다.
윤석열정부는 이후 줄곧 농축산물에 대해 수급·가격에 이상 증세만 보이면 비축물량 조기 방출, 긴급 수입 등 가격 낮추기에만 집중했다. 그만큼 농업 현장에서는 시장 교란이 발생하고, 농업생산기반은 소비자 중심의 장바구니 도구로 전락했고, 고사돼 갔다.
윤석열정부 집권 1년이 된 2023년 5월 농식품부의 ‘5월 주요 농축산물 수급대책’ 도 변함없이 수입물량 확대가 주요 내용이다.
양파·감자·닭고기 등에 대해 저율할당관세를 적용, 수입물량을 빨리 늘려 물가불안 요소를 줄이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때 봄 양파, 겨울 감자 등은 시장 출하를 통해 소득을 올리는 때다.
농축산물 생산 부문을 철저히 외면한 윤석열농정의 단면이다. 파인애플 등 추석 성수품 16만톤 긴급 수입하고, 수확기와 맞물리게 양파, 건고추, 마늘 등을 수입했다.
2024년 하반기에도 정부는 51개품목 농산물·식품원료에 대해 할당관세를 확대했다. 정부는 농산물 기본관세율 40% 포인트 범위내에서 세율을 낮춰, 이같은 할당관세 적용으로 연 1천600억원 규모의 세수 효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세수 효과는 수입·유통업자들 차지가 됐고, 내수시장의 농민들은 가격 폭락을 겪었다.
“ 우량농지 보호는 헛구호”
2024년 2월 21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윤 전 대통령은 ‘토지이용 규제 혁신’을 강조하며 그린벨트·절대농지 해제를 발표했다. 농업진흥지역이라도 투자나 편의시설 등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으면, 지자체 자율로 개발에 나서도 된다는 선언이었다.
수도권을 제외한 24만ha, 즉 여의도면적 827배가 넘는 그린벨트, 여기에 전체 경지면적의 절반수준인 77만ha의 ‘절대농지’ 등이 개발업자의 선택에 운명을 가르게 됐다.
경실련·전농 등 시민사회단체와 농민단체들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용규제를 완화해야만 지방·농촌에 활력이 생기고 경기가 살아난다는 윤석열정부의 대외 명분에, 농업계 논리가 통하지 않았다.
송미령 장관은 탄핵정국인 최근에도 “농사 안 지어도 농지 살 수 있다”고 언급했다. 파면 직전까지 정부는 ‘자율규제혁신지구’ 라며 선정된 지역에 대해 농지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는 내용을 거듭 발표했다.
이에 앞서 기재부를 비롯해 관계부처 합동으로 3월 25일 ‘입지규제 개선 및 지역 투자애로 해소를 통한 지역투자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모두 토지개발 정책의 연장선상이다.
자율규제혁신지구로 선정되면 진흥지역이 아닌 경우 비농업인도 농지를 취득할 수 있다. 진흥지역이라도 주말 체험영농 목적이라면 농지 취득이 허용된다. 지구내 농지를 취득하는 즉시 임대차가 가능해진다.
소멸위험 농촌지역에 자율규제혁신지구를 도입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비농민의 농지소유가 자유롭게 또는 광범위하게 이뤄질 경우 헌법의 경자유전 원칙이 유명무실해지는 것은 물론, 농업생산기반 존재를 위태롭게 만든다는게 농민단체·시민사회단체들의 주장이다. 윤석열정부의 토지개발사업을, 정권 파면이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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